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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일지

동화는 어디에서 시작될까|「엄마 세 번 바꿔봤습니다만」을 쓰기까지

by 들꽃 2026. 9. 1.

동화 엄마 세 번 바꿔봤습니다만 원고 화면
한글 프로그램에서 작업 중인 동화 「엄마 세 번 바꿔봤습니다만」 원고. 여러 번의 수정과 퇴고를 거쳐 완성해 간 창작 과정의 기록이다.


동화 한 편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특별한 사건을 만나거나 기막힌 이야기가 어느 날 갑자기 떠올라 시작될 수도 있겠지만, 「엄마 세 번 바꿔봤습니다만」은 내가 살고 있는 시골에서 작은도서관을 운영하며 만난 아이들에게서 시작되었다.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 가운데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많았다. 70% 정도가 다문화가정 아이들이었고,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조손가정 아이들도 있었다.

시골에서는 부모나 조부모가 농사일로 바쁜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도 곧장 집으로 돌아가기보다 공부방을 거쳐 저녁때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돌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미래에는 아이들의 교육이 어떻게 달라질까. 아이들이 지금보다 안전하게 보호받고, 필요한 돌봄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질문이 이 동화의 시작이었다.

시골 작은도서관에서 함께 활동하는 아이들
시골 작은도서관에서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활동하고 있는 모습.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만나며 느꼈던 돌봄에 대한 생각이 동화를 구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래의 아이에게 로봇 엄마가 있다면

AI가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먼 미래를 상상해 보았다.

언젠가는 사람과 비슷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일상으로 들어올 것이고, 모든 가정에 똑같은 로봇이 아니라 각자의 필요에 맞는 로봇이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조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이 떠올랐다.

조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지만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면 마음 한쪽이 안타까웠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아이 곁에서 엄마의 역할을 해주는 로봇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현실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상상 하나를 붙이자 이야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완성된 작품에서는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혼자 있게 된 나율이 할아버지에게 로봇 엄마를 빌려 달라고 부탁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처음 제목은 「엄마를 빌려 드립니다」였다

「엄마 세 번 바꿔봤습니다만」이라는 제목도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것은 아니다.

처음 제목은 「엄마를 빌려 드립니다」였다.

미래 사회에서 필요에 따라 로봇을 빌려 사용한다는 설정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때는 그 제목이 이야기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화를 쓰고 고치는 동안 이야기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로봇 엄마를 빌린다'는 미래적인 설정 자체에 관심이 컸다면, 고쳐 쓸수록 관심은 로봇보다 엄마를 필요로 하는 아이의 마음으로 옮겨갔다.

제목도 여러 번 바뀌었다. 그렇게 마지막에 남은 제목이 「엄마 세 번 바꿔봤습니다만」이었다.

제목 하나를 결정하는 일도 결국 내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엄마 세 번 바꿔봤습니다만 동화 초고와 수정 과정
「엄마 세 번 바꿔봤습니다만」으로 발전하기 전 작성했던 동화 초고 화면. 인물과 설정을 바꾸고 미래 사회에 대한 자료를 보충하며 여러 차례 수정했다.


욕심을 내어 많이 만들었다가 하나씩 줄였다

처음에는 다양한 로봇 엄마를 생각했다.

가정마다 필요한 돌봄이 다르다면 엄마 역할을 하는 로봇도 여러 종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진 엄마들을 등장시키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동화를 쓰는 것은 달랐다.

당시에는 동화를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 여러 인물을 등장시키고 각각의 특성을 살리면서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결국 하나씩 줄였다.

비슷한 역할은 덜어내고 서로의 특징이 확실하게 드러나도록 정리했다. 그렇게 공부와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엄마, 아이가 원하는 놀이에 집중하는 엄마, 생활과 건강을 챙기는 엄마가 남았다.

주인공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조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두 형제를 주인공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쓰다 보니 두 아이를 공평하게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 아이가 적극적으로 사건을 이끌면 다른 아이는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수동적인 인물이 되었다.

미래 사회의 가족을 생각했을 때 한 자녀 가정이 더 많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두 형제를 한 아이로 줄였다. 그 아이가 나율이 되었다.

이 작품을 쓰면서 처음 알았다.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꼭 많은 것을 집어넣는 일만은 아니었다.

때로는 무엇을 더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

“미래인데 생각과 배경은 현재 같아요”

초고를 완성하고 동화 합평을 했다.

그때 여러 의견 가운데 반복해서 나온 지적이 있었다.

설정은 미래인데 배경이나 사람들의 생각은 현재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로봇 엄마가 등장한다고 해서 저절로 SF동화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미래의 아이가 살아가는 이야기라면 아이를 둘러싼 세상도 달라져 있어야 했다.

학교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병원은 어떤 모습일까. 사람들은 어떻게 소통할까. 집 안의 물건은 어떻게 달라질까. 사회는 아이들을 어떤 방식으로 돌보고 있을까.

그때부터 미래 사회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미래의 의료계와 학교, 사회 시스템과 생활환경 등을 조사하면서 내가 상상한 세계를 하나씩 채워나갔다.

중요한 것은 조사한 내용을 많이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그 세계에서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미래의 기술과 장치들을 길게 설명하기보다는 나율의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놓으려고 했다. 손목에 착용하는 스크린, 자동 조리기, 홀로그램, 드론 배송 같은 장치들도 그런 과정을 거쳐 작품 속으로 들어갔다.

합평에서 받은 지적 하나가 결국 작품의 배경 전체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 셈이었다.

가장 자신 없는 장르가 SF동화였다

사실 나는 SF동화에 가장 자신이 없었다.

미래를 상상하는 것부터 어려웠다.

나는 이제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라기보다 할머니의 자리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이다. 그런 내가 아직 오지 않은 시대를 살아갈 아이의 생활을 상상하고, 그 아이의 눈으로 미래 사회를 바라본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자료조사가 더욱 필요했다.

상상만으로 부족한 부분은 자료를 찾아 채우고, 다시 원고를 읽으면서 지금 시대의 생각이나 물건이 그대로 남아 있는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고치고 나면 또 부족한 것이 보였다. 다시 찾아보고 또 고쳤다.

그렇게 여러 번 수정했지만 공모전에 작품을 보낼 때까지도 자신은 없었다.

동화를 배우며 3년 동안 여러 편의 작품을 써왔지만, SF동화는 여전히 내게 가장 낯설고 어려운 장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SF동화가 당선되었다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다.

그리고 놀라기도 했다.

내가 자신 있어 했던 장르가 아니라 가장 자신 없어 했던 SF동화로 받은 결과였기 때문이다.

3년 동안 동화를 배우고 여러 작품을 쓰면서도 SF는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돌아보면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더 많이 찾아봤는지도 모른다. 합평에서 받은 지적을 쉽게 넘기지 못했고, 미래 사회에 대한 자료를 다시 찾아가며 여러 번 수정했다.

그 경험은 내게 작은 용기를 주었다.

처음부터 잘 아는 세계만 써야 하는 것은 아니구나.

잘 모르면 찾아볼 수 있고, 상상이 부족하면 자료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처음 쓴 것이 부족하면 다시 고칠 수 있었다.

그것도 창작의 한 과정이었다.

로봇 엄마를 쓰려고 했는데 결국 남은 것은

처음에는 미래 사회와 로봇 엄마라는 설정에서 시작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완성된 작품을 다시 읽어보니 조금 달랐다.

나는 로봇 자체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도록 도와주고, 원하는 놀이를 함께해주고, 밥과 건강을 챙겨주는 것은 분명 중요한 돌봄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아이의 마음까지 채워줄 수 있을까.

작품 속 나율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로봇 엄마들을 만나면서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간다.

그 이상의 이야기는 작품 속에 남겨두고 싶다.

나는 미래의 로봇 엄마를 쓰려고 했지만, 결국 쓰고 있었던 것은 아이에게 필요한 돌봄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결국 동화는 마음에 남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 동화의 시작은 로봇이 아니었다.

SF도 아니었다.

시골 작은도서관에서 만났던 아이들이었다.

학교와 공부방을 오가며 하루를 보내던 아이들, 조부모와 함께 생활하며 엄마의 자리를 그리워하던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가졌던 마음이었다.

미래에는 아이들이 조금 더 안전하게 보호받고, 필요한 돌봄을 받으며 살아갈 수 없을까.

그 질문에 '로봇 엄마'라는 상상을 붙였다.

처음에는 두 형제였던 아이가 한 아이가 되었고, 많았던 로봇 엄마도 줄어들었다. 제목은 「엄마를 빌려 드립니다」에서 「엄마 세 번 바꿔봤습니다만」으로 바뀌었다.

합평을 받고 미래 사회를 다시 공부했고, 자료를 찾아가며 여러 번 원고를 고쳤다.

그리고 가장 자신 없어 했던 SF동화로 당선이라는 기쁨도 만났다.

한 편의 동화가 만들어지는 동안 처음 생각했던 것 가운데 많은 것이 사라지고 바뀌었다.

그래도 끝까지 남은 것이 있었다.

아이를 바라보던 마음이었다.

아마 동화는 그런 곳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마음에 걸려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사람이나 풍경, 한마디의 말. 거기에 '만약에?'라는 작은 질문을 붙이는 순간 현실에 없던 이야기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창작일지를 시작하면서 첫 번째로 「엄마 세 번 바꿔봤습니다만」을 꺼내본 이유도 그것이다.

앞으로 이곳에는 완성된 동화의 줄거리를 소개하기보다 이야기의 씨앗을 어디에서 발견했는지, 인물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겼는지, 막힌 이야기를 어떻게 다시 움직이게 했는지를 기록해보려고 한다.

완성된 작품에서는 보이지 않는 시간들.

그 시간을 하나씩 돌아보는 것도 내가 다음 동화를 쓰기 위한 또 하나의 공부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