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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쓰기12

앨리스 먼로 『거지 소녀』①|평범한 삶은 어떻게 위대한 소설이 되는가 들어가는 말 / 왜 우리는 로즈를 오래 기억하게 될까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해서 모두 어렵거나 거대한 사건을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앨리스 먼로의 소설은 놀라울 만큼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서 출발합니다. 작은 마을에서 자란 한 소녀, 가족 사이의 불편한 침묵, 오래전 지나간 수치심, 차마 다 말하지 못한 사랑과 미움. 다른 작가였다면 몇 줄로 지나쳤을 일상이 먼로의 소설에서는 한 사람의 인생을 이루는 결정적인 순간이 됩니다.그래서 처음 『거지 소녀』를 읽으면 다소 의아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눈을 사로잡는 극적인 사건이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하나의 줄거리로 빠르게 달려가는 장편도 아닙니다. 서로 다른 단편들이 흩어져 있을 뿐인데, 책장을 덮고 나면 마치 로즈라는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오랫동.. 2026. 7. 23.
줌파 라히리 『길들지 않은 땅』|좋은 소설은 어떻게 살아 있는 인물을 만드는가 소설을 읽다 보면 이상한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줄거리는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는데, 어떤 인물은 오래 남습니다. 실제로 만났던 사람처럼 그의 표정이 떠오르고, 말투가 기억나고, 그 사람이 했던 선택이 문득 생각납니다.왜 그럴까요.좋은 소설은 사건보다 먼저 사람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줌파 라히리의 「길들지 않은 땅」 역시 그렇습니다. 작품에는 극적인 사건도, 반전도 없습니다. 아내를 잃은 아버지가 딸 루마의 집에서 며칠을 보내는 이야기입니다. 줄거리만 옮겨 적는다면 몇 줄이면 끝날지도 모릅니다.그런데 작품을 덮고 나면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두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침묵과 루마의 망설임, 서로를 아끼면서도 끝내 가까워지지 못하는 거리감은 오래 마음에 머뭅니다. 독자는 그들의 삶을 모.. 2026. 7. 21.
김연수 『소설가의 일』 |소설은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다 들어가는 글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는 소설을 잘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작법서를 기대했다. 좋은 문장을 만드는 법, 인물을 설계하는 법, 이야기를 끌고 가는 기술 같은 것들을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난 뒤 오래 남은 것은 기술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 사람의 삶과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에 관한 질문이었다.우리는 흔히 소설을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김연수는 상상보다 먼저 이해를 이야기한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끝내 이해하려는 노력, 지나간 삶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 실패와 상처를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는 태도. 그래서 『소설가의 일』은 단순한 작법서가 아니라 인간을 오래 바라본 기록처럼 읽힌다.이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질문도 하나였다.'소설은 왜 사람을.. 2026. 7. 17.
김훈 작가의 문장은 왜 오래 남을까 / 좋은 문장은 무엇을 덜어낼지 안다 1. 좋은 문장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이다 좋은 문장을 쓰려면 무엇을 더해야 할까. 화려한 표현일까, 어려운 단어일까, 아니면 독자를 놀라게 하는 비유일까.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고민을 한다. 하지만 김훈의 문장을 읽다 보면 정반대의 답을 만나게 된다. 좋은 문장은 무엇을 더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덜어낼지를 아는 문장이라는 사실이다.김훈의 소설과 산문에는 불필요한 말이 거의 없다. 감정을 크게 설명하지도 않고, 화려한 수식어를 늘어놓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문장은 오래 남는다. 짧고 단단한 문장 하나가 독자의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울린다. 이것이 바로 많은 독자가 김훈의 문장을 '아름답다'기보다 '묵직하다'라고 말하는 이유일 것이다.대표작 『칼의 노래』를 읽으면 이런 특.. 2026. 7. 16.
왜 어떤 주인공은 평생 잊히지 않을까|좋은 소설 속 인물의 비밀 1. 우리는 줄거리보다 사람을 기억한다어린 시절 읽었던 소설의 줄거리를 모두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 사건의 순서도 흐릿해지고, 결말마저 가물가물해진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주인공이다.누군가는 『어린 왕자』를 떠올리면 금발 소년의 순수한 눈빛이 먼저 생각나고, 『데미안』을 읽은 사람은 여전히 싱클레어와 데미안을 기억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덮은 뒤에도 독자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 것은 줄거리보다 영혜라는 인물이다. 작품은 끝났지만 인물은 독자의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간다.왜 어떤 주인공은 평생 잊히지 않을까. 좋은 소설은 사건이 특별해서 오래 남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 있기 때문에 오래 남는다. 독자는 사건을 따라 책장을 넘기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 2026. 7. 15.
작가는 왜 첫 문장을 가장 늦게 쓸까 소설은 첫 문장에서 시작되지 않는다1. 첫 문장은 가장 마지막에 완성된다많은 사람들은 소설이 첫 문장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작가도 첫 줄을 쓰고, 그다음 문장을 이어 가며 한 권의 소설을 완성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작가들은 첫 문장을 가장 늦게 완성한다.처음에는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다. 첫 문장이 있어야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막상 소설을 써 본 사람이라면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인물의 성격이 달라지고, 주제가 조금씩 선명해지며, 결말마저 처음 계획과 달라지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첫 문장이 끝까지 가서는 더 이상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존 가드너도 『소설의 기술』에서 좋은 소설은 독자를 하나의 .. 2026. 7.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