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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서평35

이장욱<절반 이상의 하루오>분석 / 하루오는 어떤 인물인가 들어가는 말이장욱의 「절반 이상의 하루오」를 읽고 나면 이상하게 하루오라는 인물이 오래 남는다. 아주 극적인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속마음을 길게 털어놓는 인물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일본에 있을 때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 훌쩍 여행을 떠나고, 여행지에 도착해서도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다니기보다 그곳에서 그냥 살아가는 것처럼 시간을 보낸다.처음에는 하루오를 조금 특이한 여행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작품을 끝까지 읽고 나면 하루오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하루오가 어디를 여행했느냐가 아니라 ‘나’가 하루오를 어떻게 바라보았고, 그를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시간이 흐른 뒤 왜 자신의 삶에서 다시 하루오를 발견하게 되는.. 2026. 8. 13.
소설에서 ‘설명하지 않는 인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독자가 인물을 오래 기억하는 이유 소설을 쓰다 보면 자꾸 인물을 설명하게 된다. 주인공이 왜 화를 내는지, 왜 사람을 피하는지, 어린 시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독자가 알아야 인물을 이해할 것 같기 때문이다. 나 역시 글을 쓰다가 인물의 행동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은 것 같으면 한두 문장을 덧붙이곤 한다.‘그는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사람을 믿지 못했다.’이 한 문장을 쓰는 순간 마음은 편해진다. 이제 독자가 이 인물을 오해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한 인물보다 이유를 다 말하지 않은 인물이 더 오래 기억될 때가 있다.좋은 소설 속 인물은 실제 사람과 닮아 있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에게조차 ‘왜 그때 그런 말을 했을까’ 하고 뒤늦게 생각하는 순간이 있듯, 소설 속 인물도 모든 행동의 이유가 하나.. 2026. 8. 12.
김연수 「동욱」 3부|불은 왜 끝까지 꺼지지 않는가 김연수의 「동욱」에서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하나 고르라면 역시 ‘불’이다. 빈집에 불이 나고 사람이 죽는다. 동욱은 그 화재와 연결되면서 ‘방화범’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따라서 처음 읽을 때 불은 사건을 일으킨 물리적인 불처럼 보인다. 독자 역시 자연스럽게 누가 불을 질렀는지, 동욱은 왜 그곳에 있었는지를 궁금해한다.그러나 소설을 끝까지 읽고 나면 불은 처음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남는다. 건물을 태운 불은 폐허와 재개발이라는 사회의 기억으로 번지고, 다시 동욱을 바라보는 화자의 내면으로 옮겨간다. 결국 불은 사건의 원인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아 있는 무엇을 드러내는 이미지가 된다.더 흥미로운 것은 이토록 뜨거운 사건을 다루면서도 김연수의 문장은 좀처럼 뜨거워지지 않는다는 점이다.불은 타오르는데.. 2026. 8. 11.
김연수 「동욱」|사회문제를 소설로 쓸 때 작가는 어디에 서야 하는가 김연수의 「동욱」을 처음 읽으면 청소년 범죄를 다룬 소설처럼 보인다. 중학생 동욱은 사람이 죽은 화재사건과 연결되고, 경찰과 언론의 시선 속에서 ‘방화범’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사건의 진실을 궁금해한다. 정말 동욱이 불을 질렀을까.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무엇이 한 아이를 그런 행동으로 밀어 넣었을까.그런데 조금 더 읽으면 이 소설이 독자에게 요구하는 질문이 달라진다. 관심은 ‘누가 불을 질렀는가’에서 ‘우리는 동욱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로 옮겨간다. 그리고 다시 ‘그 아이가 서 있던 곳은 어떤 세계였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한 아이의 범죄처럼 보였던 사건 뒤로 빈집과 죽음, 재개발과 사라지는 장소들이 겹쳐진다.그래서 「동욱」은 사회문제를 소설로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2026. 8. 9.
김연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①고통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 들어가는 말소설을 읽다 보면 한 가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작가는 사람의 고통을 어떻게 문장으로 옮길까. 누구나 상실을 겪고 불안을 느끼지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적는다고 해서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소설은 고통을 설명하는 대신 독자가 직접 느끼도록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인물의 시간을 함께 견디고, 그 사람의 마음속을 천천히 걸어가게 된다.김연수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커다란 사건으로 독자를 붙잡지 않는다. 대신 잠들지 못하는 한 사람의 밤, 무겁게 가슴을 누르는 보이지 않는 상처, 그리고 타인과 함께 걷는 시간을 통해 인간의 삶을 조용히 들여다본다.강의교안에서도 이 작품을 읽을 때 가장 먼저 살펴볼 점으로 작가.. 2026. 8. 3.
정소현 「지나간 미래」|이미 지나간 과거는 왜 미래의 얼굴로 돌아오는가 미래를 보는 능력처럼 시작해, 기억의 윤리를 묻는 소설도입에서는 반전을 먼저 폭로하기보다 작품을 처음 읽을 때 독자가 겪는 경험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화자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영상처럼 본다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이 설정을 환상소설의 문법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미래의 영상들은 이상할 만큼 구체적이면서도 화자의 현실과 어긋납니다. 낯선 남자는 화자를 어머니라고 부르고, 사라졌던 건물과 거리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들어서 있으며, 주변 사람들은 화자가 아니라 남자의 말을 믿습니다.독자는 화자의 공포에 동조하면서도 조금씩 화자를 의심하게 됩니다. 이때 작품이 묻는 것은 단순히 “화자의 정체는 무엇인가”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견딜 수 없을 때 기억은 어떻게 새로운.. 2026. 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