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화를 처음 구상할 때는 인물이 많으면 이야기도 풍성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세 번 바꿔봤습니다만」도 처음에는 지금과 달랐다. 주인공은 한 아이가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두 형제였다.
두 아이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로봇 엄마를 만나면서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면 이야기가 더 재미있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쓰기 시작하자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겼다.
두 아이를 등장시키는 것과 두 아이를 모두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두 명을 주인공으로 만들면 이야기가 풍성해질 줄 알았다
처음 두 형제를 설정했을 때는 장점이 많아 보였다.
같은 일을 겪어도 형과 동생이 다르게 생각할 수 있고, 서로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한 아이가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두 아이가 부딪치고 의논하면 장면도 훨씬 살아날 것 같았다.
특히 로봇 엄마를 만났을 때 두 아이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면 자연스럽게 갈등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원고를 써 내려갈수록 한 가지 문제가 눈에 들어왔다.
두 아이가 함께 등장하고 있는데도 이야기를 끌고 가는 아이는 늘 한 명이었다.
한 아이가 먼저 말하고 행동하면 다른 아이는 그 말을 듣거나 따라갔다. 한 아이가 선택하면 다른 아이는 그 선택에 반응했다.
두 아이를 주인공으로 만들었지만 실제 원고에서는 한 아이가 주인공이고 다른 한 아이는 주인공을 따라다니는 인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등장하는 것과 역할이 있는 것은 달랐다
처음에는 두 아이에게 대사를 비슷하게 주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아이가 한마디 하면 다른 아이에게도 한마디를 주고, 한 아이가 행동하면 다른 아이에게도 무언가를 하게 했다.
그런데 그것도 해결책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야기가 길어졌다.
중요한 것은 대사의 길이가 아니었다. 한 아이가 너무 수동적이었다.
한 아이를 없애면 이야기가 어떻게 될까?
이 질문으로 생각해 보니 조금 분명해졌다.
두 형제 가운데 한 아이를 빼도 중요한 사건의 흐름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두 아이를 모두 주인공으로 둘 이유가 약한 것이다.
이야기 속 인물에게 필요한 것은 대사의 양이 아니라 자기 역할이었다.

두 형제를 한 아이로 줄였다
결국 두 형제를 한 아이로 줄이기로 했다.
미래 사회의 가족 모습을 생각하면서 한 자녀 가정이 지금보다 많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무엇보다 두 아이에게 억지로 역할을 나누기보다 한 아이의 마음과 선택을 따라가는 편이 이 이야기에 더 잘 맞았다.
그렇게 남은 한 아이가 나율이 되었다.
인물을 하나 없앴는데 이상하게 이야기는 빈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누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지가 분명해졌다. 로봇 엄마를 원하는 사람도 나율이고, 로봇 엄마와 생활하는 사람도 나율이고, 그 경험을 통해 마음이 달라지는 사람도 나율이었다.
인물을 줄였더니 주인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물을 줄인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초고를 쓸 때 만든 인물은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이름도 지어주었고 성격도 생각했고, 그 아이가 등장하는 장면도 이미 써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만 더 역할을 만들어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역할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사건을 넣고, 그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다시 장면을 만드는 순간 이야기는 점점 처음 가려고 했던 곳에서 멀어졌다.
그때 알았다.
인물을 살리기 위해 이야기를 만드는 것과 이야기에 꼭 필요한 인물을 남기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모든 인물을 끝까지 데리고 갈 필요는 없었다.
동화에서는 한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는 힘도 중요했다
특히 동화를 쓰면서 주인공의 수를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주인공이 여러 명인 동화도 얼마든지 있다. 두 아이가 각자의 욕망과 갈등을 가지고 이야기를 함께 끌고 간다면 굳이 한 명으로 줄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가 쓰고 있던 이야기는 달랐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여러 아이가 미래의 로봇을 체험하는 일이 아니라, 한 아이가 자신에게 필요한 돌봄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독자가 따라가야 할 마음도 한곳에 모아주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나율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무엇 때문에 좋아하는지, 언제 실망하는지를 따라갈 수 있어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두 형제를 한 아이로 줄인 선택이 단순히 ‘등장인물을 줄인 것’만은 아니었다.
이야기의 중심을 정하는 일이었다.
지금은 인물을 만들 때 먼저 물어본다
이 작품을 고친 뒤부터 인물을 만들 때 예전과 조금 다른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런 인물이 있으면 재미있을까?’보다 먼저 생각하는 것이 있다.
이 인물은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하는가.
주인공의 선택을 바꾸는 사람인지, 갈등을 만드는 사람인지, 주인공이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는 사람인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가끔은 더 어려운 질문도 해본다.
이 인물을 빼면 이야기가 무너질까?
빼도 아무 문제가 없다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모든 조연이 큰 사건을 일으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분위기를 만들거나 주인공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인물도 있다.
다만 내가 그 인물을 왜 등장시켰는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
많이 만드는 것보다 제대로 남기는 것
「엄마 세 번 바꿔봤습니다만」의 초고를 생각하면 지금도 두 형제가 떠오른다.
처음에는 둘이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아이를 원고에서 보내주고 나서야 남은 아이가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작을 배우면서 자꾸 무언가를 더하려고 했다.
인물을 더 만들고, 사건을 더 넣고, 재미있는 설정을 하나 더 붙이면 이야기가 좋아질 것 같았다.
그런데 실제로 원고를 고치는 과정에서는 반대의 일이 더 많았다.
줄이고, 합치고, 버리고, 다시 줄였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조금씩 선명해졌다.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만들어냈느냐가 아니라, 그 가운데 무엇을 끝까지 남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두 형제를 한 아이로 바꾸면서 내가 배운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원고에서도 인물이 자꾸 늘어날 때면 한 번쯤 멈춰서 묻게 된다.
이 아이는 정말 이 이야기에 꼭 필요한가.
그 질문 하나가 복잡해진 원고를 다시 바라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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