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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서평

소설에서 ‘설명하지 않는 인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독자가 인물을 오래 기억하는 이유

by 들꽃 2026. 8. 12.

소설 속 인물을 모두 설명하지 않고 행동과 대사로 보여 주는 인물 창작법
펼쳐진 원고와 연필 너머로 창가에 선 인물의 뒷모습을 담은 이미지.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고 여백을 남기는 소설 속 인물 창작법을 표현했다.

 

 

소설을 쓰다 보면 자꾸 인물을 설명하게 된다. 주인공이 왜 화를 내는지, 왜 사람을 피하는지, 어린 시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독자가 알아야 인물을 이해할 것 같기 때문이다. 나 역시 글을 쓰다가 인물의 행동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은 것 같으면 한두 문장을 덧붙이곤 한다.

‘그는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사람을 믿지 못했다.’

이 한 문장을 쓰는 순간 마음은 편해진다. 이제 독자가 이 인물을 오해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한 인물보다 이유를 다 말하지 않은 인물이 더 오래 기억될 때가 있다.

좋은 소설 속 인물은 실제 사람과 닮아 있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에게조차 ‘왜 그때 그런 말을 했을까’ 하고 뒤늦게 생각하는 순간이 있듯, 소설 속 인물도 모든 행동의 이유가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작가는 인물을 얼마나 설명해야 할까.

최근 소설을 읽으며 나는 ‘인물을 잘 설명하는 법’보다 ‘어디에서 설명을 멈출 것인가’가 더 중요한 창작 기술일 수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인물의 과거를 알려 주면 정말 인물이 깊어질까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가장 쉽게 사용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과거를 보여 주는 것이다.

현재 무뚝뚝한 인물이라면 어린 시절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기억을 넣고, 돈에 집착하는 인물이라면 가난했던 과거를 제시한다. 독자는 그 정보를 읽는 순간 현재의 행동을 이해하게 된다.

문제는 이해가 너무 빨리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 그래서 이 사람이 이렇구나.’

독자가 이 결론에 도달하는 순간 인물에 대한 궁금증도 함께 사라질 수 있다.

실제 사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가난하게 자란 두 사람이 모두 돈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고, 같은 상처를 경험한 사람들이 똑같은 선택을 하지도 않는다. 한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데에는 성격과 기억, 관계, 욕망과 우연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런데 소설에서 과거의 사건 하나로 현재의 성격을 모두 설명해 버리면 인물은 오히려 단순해진다.

과거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현재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의 인물을 더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어떤 인물이 오래전 친구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하자. 그 사실 때문에 지금 누구도 믿지 않는다고 설명하면 인물의 성격은 정리된다. 반면 그가 사람을 믿지 않으면서도 매일 같은 시간에 누군가를 기다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독자는 묻게 된다.

믿지 않는다면서 왜 기다리는가.

바로 그 모순에서 인물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감정을 쓰지 말라는 말은 감정을 없애라는 뜻이 아니다

소설 쓰기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감정을 직접 설명하지 말고 보여 줘라.’

하지만 실제로 써 보면 쉽지 않다.

‘영희는 몹시 슬펐다’를 지우고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해진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고 손을 떨고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는 표현으로 바꾸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 역시 슬픔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는 데 그칠 수 있다.

나는 이럴 때 감정 자체보다 감정 때문에 달라진 행동을 찾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커피를 두 잔 마시던 사람이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다. 매일 아침 커튼을 열던 사람이 며칠째 창문을 닫아 둔다. 누군가 떠난 뒤에도 식탁에 습관처럼 수저 두 벌을 놓는다.

어느 문장에도 ‘슬프다’는 말은 없다.

하지만 독자는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느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독자가 감정을 ‘알게’ 되는 것과 ‘느끼게’ 되는 것의 차이다.

작가가 “그는 슬펐다”고 말하면 독자는 정보를 얻는다. 그러나 인물의 달라진 행동을 발견하면 독자는 그 변화의 이유를 스스로 생각한다.

그 짧은 추론에 독자가 참여하는 순간 인물은 작가만의 인물이 아니라 독자가 발견한 인물이 된다.


좋은 인물에게는 서로 맞지 않는 두 가지 마음이 있다

내가 소설을 쓰면서 특히 어려워하는 것은 인물을 일관되게 만들려는 습관이다.

착한 사람은 계속 착해야 할 것 같고, 소심한 아이는 결정적인 순간에도 머뭇거려야 할 것 같다. 앞뒤가 맞지 않으면 인물 설정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 사람을 떠올려 보면 오히려 반대다.

평소 다정한 사람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잔인한 말을 하기도 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 어느 한순간 누구보다 용감하게 나서기도 한다. 독립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혼자 남는 것을 두려워할 수도 있다.

사람 안에는 서로 맞지 않는 마음이 함께 존재한다.

그래서 인물을 만들 때 성격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것보다 서로 충돌하는 욕망 두 개를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사랑받고 싶지만 가까워지는 것은 두렵다.

떠나고 싶지만 잊히는 것은 싫다.

용서하고 싶지만 사과받지 못한 채 용서하는 것은 억울하다.

혼자 있고 싶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면 서운하다.

이런 두 마음을 동시에 가진 인물은 작가가 계속 설명하지 않아도 움직일 힘을 얻는다.

어떤 장면에서는 한쪽 욕망을 따르고 다른 장면에서는 반대쪽 욕망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독자는 그 모순을 보면서 인물을 판단하기보다 궁금해한다.

‘이 사람은 결국 어느 쪽을 선택할까.’

그 질문이 다음 장면을 읽게 만드는 힘이 된다.


인물의 침묵도 하나의 대사가 될 수 있다

초고를 쓰고 나서 대화를 읽어 보면 등장인물들이 지나치게 말을 잘할 때가 있다.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알고, 갈등의 원인을 설명하고, 상대에게 필요한 말까지 한다.

현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실제 대화에서는 중요한 순간일수록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다른 말을 하거나 질문을 피하고, 말하다 멈추거나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꺼낸다.

“왜 그때 오지 않았어?”

라는 질문을 받은 인물이 있다고 해보자.

“네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사실 거절당할까 두려웠거든.”

이라고 대답하면 그의 마음은 정확히 전달된다.

하지만 그가 잠시 창밖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비가 많이 왔잖아.”

독자는 오히려 그 말을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정말 비 때문에 가지 않은 것인지, 변명하는 것인지, 다른 이유를 말하지 못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대사는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인물이 감추고 있는 것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말하지 않은 것이 말한 것보다 커지는 순간, 인물의 내부에 작가가 설명하지 않은 공간이 생긴다.


독자에게 빈칸을 주되 단서는 남겨야 한다

그렇다고 설명을 줄이기만 하면 인물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

아무 정보도 주지 않고 모호하게 행동하게 하면 독자는 인물을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다고 느낀다. ‘설명하지 않기’와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기’는 전혀 다르다.

작가는 답을 말하지 않는 대신 답을 생각할 수 있는 단서를 남겨야 한다.

반복되는 행동, 유난히 피하는 장소, 특정 사람 앞에서 달라지는 말투, 버리지 못하는 물건, 중요하지 않은 척하면서 계속 확인하는 것 등이 그런 단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한다는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매년 같은 날 냉장고에 미역을 사다 놓는 인물을 보여 줄 수 있다.

왜 미역을 샀는지 바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이후 다른 장면에서 그날이 어머니의 생일이었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면 앞의 행동은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독자는 두 장면을 스스로 연결한다.

나는 이런 순간이 소설 읽기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답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이야기 안에서 답의 조각을 발견하는 것이다.


초고를 고칠 때 ‘설명 문장’을 한번 의심해 본다

최근에는 초고를 고칠 때 문장이 서툰가만 보지 않고 인물을 대신해 내가 너무 많이 말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살펴보려고 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하면 한 번 멈춰 본다.

‘그는 ~ 때문에 화가 났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에 그는 ~한 사람이 되었다.’

이런 문장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필요한 곳에서는 분명 유용하다.

다만 그 문장을 지웠을 때 앞뒤의 행동과 대사만으로도 독자가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면 굳이 다시 넣지 않아도 된다.

반대로 지우는 순간 인물의 행동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면 설명을 되살리기 전에 먼저 장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물의 마음을 보여 줄 행동이나 관계가 부족한 것은 아닌가.

설명 한 문장을 추가하는 것보다 장면 하나를 정확하게 만드는 것이 더 좋은 해결책일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퇴고는 문장을 예쁘게 고치는 작업에서 조금 달라진다.

작가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어디까지 독자에게 내어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작업이 된다.


창작자의 독서|인물은 설명이 끝난 곳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좋아했던 소설의 인물을 떠올려 보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이해하지 못한 행동 하나, 끝내 말하지 않은 마음 하나가 오래 남는다.

처음에는 그것이 작가가 빠뜨린 빈칸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작품에서는 그 빈칸이 인물의 삶이 소설 바깥에서도 계속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만든다.

나 역시 동화를 쓰거나 소설의 인물을 만들 때 독자가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서둘러 답을 주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인물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과 인물을 모두 설명하는 것은 다르다.

독자가 따라갈 길은 만들어 주되 마지막 문까지 작가가 열어 줄 필요는 없다.

문 앞까지 데려간 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잠시 상상하게 하는 것.

어쩌면 인물을 만드는 일에는 그런 기다림도 필요한지 모르겠다.

그래서 다음 초고를 쓸 때는 인물에게 새로운 설정 하나를 더 붙이기 전에 먼저 물어보려 한다.

이 사람에게 내가 아직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 질문 하나가 인물을 조금 더 사람답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