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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의 독서

김연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①고통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

by 들꽃 2026. 8. 3.

김연수 소설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책 표지.
김연수 소설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 표지. 수록작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을 중심으로 고통의 형상화, 인물의 관계, 문장과 정서를 분석한 글.


들어가는 말

소설을 읽다 보면 한 가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작가는 사람의 고통을 어떻게 문장으로 옮길까. 누구나 상실을 겪고 불안을 느끼지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적는다고 해서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소설은 고통을 설명하는 대신 독자가 직접 느끼도록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인물의 시간을 함께 견디고, 그 사람의 마음속을 천천히 걸어가게 된다.

김연수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커다란 사건으로 독자를 붙잡지 않는다. 대신 잠들지 못하는 한 사람의 밤, 무겁게 가슴을 누르는 보이지 않는 상처, 그리고 타인과 함께 걷는 시간을 통해 인간의 삶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강의교안에서도 이 작품을 읽을 때 가장 먼저 살펴볼 점으로 작가가 인물의 고통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고통을 지나며 인물이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는지,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갈등과 화해를 이루는지, 문장이 작품의 정서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를 제시한다. 이 네 가지 질문은 작품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하다.

나는 이번 작품을 읽으며 줄거리보다 먼저 '고통은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붙잡게 되었다. 그리고 김연수는 그 질문에 설명이 아니라 이미지와 문장으로 답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김연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이 시작되는 책의 첫 페이지.
김연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첫 페이지. 작품의 첫 문장을 바탕으로 불면과 코끼리의 상징, 고통의 형상화 방식을 분석하는 장면.


1. 불면과 코끼리, 고통은 어떻게 형상화되는가

김연수는 인물의 상처를 사건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소설이라면 먼저 과거의 비극이나 상실을 설명한 뒤 현재의 고통을 보여 줄 것이다. 그러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은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한다.

작품의 첫 문장은 석 달 가까이 계속된 불면을 이야기한다. 강의교안도 이 첫 문장을 두고 작가는 인물의 고통을 첫 문장에서 '불면증'으로 설정하여 서사 안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인다고 설명한다.

이 방식이 흥미로운 이유는 고통의 원인을 먼저 밝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독자는 왜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지 못해도 이미 인물의 몸 안으로 들어간다. 밤이 길어지는 감각, 머릿속이 맑아질수록 더 깊어지는 불안, 잠을 자고 싶지만 잠들 수 없는 시간이 먼저 독자의 감각을 지배한다.

그리고 김연수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보이지 않는 고통을 '코끼리'라는 구체적인 존재로 바꾸어 놓는다. 교안 역시 이 장면을 추상적인 고통을 '코끼리'라는 구체적인 생명체로 형상화한 대표적인 사례로 설명한다.

코끼리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것은 인물의 심장 위에 올라앉아 떠나지 않는 기억이며, 한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견디게 만드는 무게다. 슬픔이나 죄책감이라는 추상어보다 코끼리라는 이미지는 훨씬 강하게 독자의 몸에 와닿는다. 우리는 더 이상 '상처'를 머리로 이해하지 않는다. 심장 위를 짓누르는 거대한 생명체를 함께 느끼게 된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이 장면은 매우 중요한 배움이 된다. 감정을 직접 설명하는 대신 하나의 이미지를 통해 감정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것, 이것이 김연수가 보여 주는 소설의 힘이다. 좋은 비유는 문장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독자가 인물의 마음을 자신의 감각처럼 체험하게 만드는 문학적 장치라는 사실을 이 작품은 조용히 증명한다.


2. 사람은 고통을 지나며 어떻게 삶을 바라보는가

이 작품에서 고통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김연수는 고통을 이겨 낸 사람보다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게 더 오래 시선을 머문다.

그래서 작품 속 인물은 상처를 없애려 애쓰기보다 그 상처를 안은 채 하루를 살아간다. 불면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고, 코끼리도 쉽게 떠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물은 다시 길을 나서고,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 이 변화는 거창한 성장 서사가 아니라 삶을 견디는 태도의 변화에 가깝다.

강의교안은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전체를 관통하는 특징으로 타인을 끝까지 이해하려 애쓰지만 결국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제시한다. 이것이 바로 김연수 소설의 힘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이 대목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많은 소설이 고통을 극복하거나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면, 김연수는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이야기한다. 인생은 모든 상처가 회복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회복되지 않은 상처를 품은 채 누군가와 나란히 걸어가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창작을 하면서 우리는 인물에게 분명한 결말을 주고 싶어진다. 갈등은 해결되어야 하고, 상처는 치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김연수는 삶이 언제나 그렇게 마무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인물들은 완벽하게 달라지지 않는다. 대신 조금 더 타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나는 이것이 김연수 문학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고통을 없애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안고도 타인과 함께 걸을 수 있을 때 조금씩 깊어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작품의 '산책'은 단순히 길을 걷는 행위가 아니라,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속도를 맞추며 삶을 계속 이어 가는 방식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3. 사람은 관계 속에서 어떻게 갈등하고 화해하는가

김연수의 소설에서 관계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관계는 한 사람의 고통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자리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에서도 인물들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시간을 보내지만, 각자가 짊어진 상처의 무게는 다르다.

그런데 김연수는 이 차이를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그리지 않는다. 상대의 마음을 모두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관계는 시작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강의교안에서도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의 인물들은 타인을 끝까지 이해하려 하지만 결국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며, 그럼에도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고 설명한다.

이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많은 소설은 갈등을 해결하는 순간을 결말로 삼는다. 오해가 풀리고, 용서가 이루어지고, 관계가 회복되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그러나 김연수는 그런 결말을 서두르지 않는다.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고,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그대로 존재한다. 그럼에도 인물들은 같은 길을 걷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산책'이라는 제목도 새롭게 보였다. 산책은 목적지를 향해 서둘러 가는 행위가 아니다. 누군가와 같은 속도로 걸으며 풍경을 바라보고, 침묵을 견디는 시간이다. 결국 이 작품에서 산책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상징한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곁을 지켜 주는 일, 그것이 김연수가 말하는 관계의 윤리라고 생각한다.

창작자의 입장에서도 배울 점이 많다. 관계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인물 사이의 미묘한 거리감이다. 설명으로 화해를 선언하는 대신, 함께 걷는 장면 하나가 훨씬 깊은 감동을 만든다. 김연수는 바로 그 절제를 알고 있는 작가다.


4. 김연수는 문장으로 어떻게 정서를 만드는가

김연수의 문장을 읽고 나면 화려한 수사보다 호흡이 먼저 기억난다. 그의 문장은 독자를 놀라게 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인물의 감정을 천천히 따라가도록 속도를 맞추기 위해 존재한다.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고통은 큰 목소리로 외쳐지지 않는다. 짧은 문장 하나, 조용한 풍경 하나, 반복되는 이미지 하나가 서서히 정서를 쌓아 간다. 특히 '불면'과 '코끼리'는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작품 전체의 리듬을 만들어 가는 중심 이미지다. 한 번 등장하고 사라지는 비유가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계속 비추는 거울이 된다.

나는 김연수의 문장에서 가장 배우고 싶은 것이 바로 이 절제다. 슬픔을 직접 말하지 않고도 슬픔을 느끼게 하는 문장, 상처를 설명하지 않고도 상처의 무게를 전달하는 문장. 이것은 화려한 표현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힘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이미지의 반복이다. 코끼리는 단순히 불면의 비유가 아니다. 독자는 그 이미지를 따라가며 고통의 무게를 조금씩 체험한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상징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자연스럽게 인물의 일부가 된다. 좋은 상징은 설명될 때가 아니라 반복될 때 힘을 얻는다는 사실을 김연수는 보여 준다.

창작자로서 이 작품을 읽으며 다시 확인한 것은, 문장은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정서를 만드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독자는 사건을 기억하기보다 문장의 호흡을 기억한다. 그래서 좋은 문장은 책을 덮은 뒤에도 마음속에서 계속 이어진다.


5. 창작자가 김연수에게 배우는 소설의 기술

이번 작품을 읽으며 오래 메모해 두고 싶은 것은 다섯 가지였다.

첫째, 고통은 설명하지 말고 형상화하라.
'슬프다'고 말하는 대신 심장을 누르는 코끼리 한 마리를 보여 주는 것이 훨씬 강하다.

둘째, 인물은 고통을 극복하기보다 견디며 살아간다.
현실의 삶과 닮은 서사는 완벽한 치유보다 견디는 시간을 보여 준다.

셋째, 관계는 이해보다 동행에 가깝다.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함께 걸을 수 있다는 믿음이 관계를 지탱한다.

넷째, 상징은 반복될 때 작품의 언어가 된다.
불면과 코끼리는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의 중심축이다.

다섯째, 문장은 감정을 앞지르지 않는다.
절제된 문장은 독자에게 해석의 여백을 남기고, 그 여백 속에서 감동은 더 깊어진다.

이 다섯 가지는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만의 특징이 아니라, 오래 읽히는 소설이 공통으로 지닌 힘이라고 생각한다.


창작자의 노트

김연수의 소설을 읽으며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코끼리도, 불면도 아니었다. 상처를 안고도 누군가와 함께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소설을 쓰다 보면 갈등을 크게 만들고, 반전을 준비하고, 독자를 놀라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정반대의 길을 보여 준다. 삶은 극적인 사건보다 평범한 하루 속에서 더 많이 흔들리고, 사람은 거대한 깨달음보다 작은 이해를 통해 조금씩 변한다.

나는 앞으로 소설을 쓸 때도 이 작품을 떠올릴 것 같다. 인물의 고통을 설명하기보다 하나의 이미지로 남기는 일, 관계를 해결하기보다 함께 걸어가는 시간으로 그려 내는 일, 그리고 문장이 앞서기보다 인물의 숨결을 따라가게 하는 일.

좋은 소설은 독자를 울리는 작품이 아니라, 독자가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인지도 모른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은 그런 의미에서 고통을 이야기하는 소설이 아니라,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품위를 조용히 증언하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