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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의 독서

앨리스 먼로 『거지 소녀』①|평범한 삶은 어떻게 위대한 소설이 되는가

by 들꽃 2026. 7. 23.

들어가는 말 / 왜 우리는 로즈를 오래 기억하게 될까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해서 모두 어렵거나 거대한 사건을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앨리스 먼로의 소설은 놀라울 만큼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서 출발합니다. 작은 마을에서 자란 한 소녀, 가족 사이의 불편한 침묵, 오래전 지나간 수치심, 차마 다 말하지 못한 사랑과 미움. 다른 작가였다면 몇 줄로 지나쳤을 일상이 먼로의 소설에서는 한 사람의 인생을 이루는 결정적인 순간이 됩니다.

그래서 처음 『거지 소녀』를 읽으면 다소 의아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눈을 사로잡는 극적인 사건이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하나의 줄거리로 빠르게 달려가는 장편도 아닙니다. 서로 다른 단편들이 흩어져 있을 뿐인데, 책장을 덮고 나면 마치 로즈라는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오랫동안 함께 살아낸 것 같은 여운이 남습니다.

이 여운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우리는 흔히 소설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먼로는 이야기보다 사람을 먼저 믿는 작가입니다. 그녀가 관심을 두는 것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품고 살아가는가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인물들은 과거를 극복하지도 않고,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합니다. 떠났지만 끝내 떠나지 못하고,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며, 잊으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오래전 기억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갑니다. 먼로는 바로 그 복잡한 마음을 섣불리 정리하지 않습니다.

『거지 소녀』는 로즈라는 여성의 유년기부터 중년까지를 따라가는 연작소설입니다. 그중에서도 「장엄한 매질」과 「스펠링」은 이 연작의 시작과 끝을 감싸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장엄한 매질」에서는 어린 로즈와 계모 플로 사이의 거칠고 폭력적인 관계가 그려지고, 「스펠링」에서는 세월이 흘러 늙고 쇠약해진 플로를 마주한 중년의 로즈가 등장합니다. 두 작품 사이에는 긴 시간이 흐르지만, 독자는 그 시간의 무게를 설명이 아니라 인물의 변화 속에서 느끼게 됩니다.

이 두 편을 함께 읽으면 『거지 소녀』가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먼로가 보여 주려는 것은 한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뿌리와 평생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가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로즈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이번 글에서는 먼저 『거지 소녀』가 왜 장편이 아닌 연작소설의 형식을 선택했는지 살펴보고, 이어 로즈와 플로라는 두 인물이 어떻게 서로를 통해 한 인간의 삶을 완성해 가는지 함께 읽어 보려 합니다.


1 연작소설이라는 놀라운 설계|삶은 직선이 아니라 기억의 조각이다

『거지 소녀』를 처음 읽는 독자 가운데는 "이 책은 장편일까, 단편집일까?"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각각의 작품은 독립적으로 읽혀도 완결성을 갖추고 있지만, 한 권을 모두 읽고 나면 로즈라는 한 인물의 일생이 또렷하게 남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먼로가 선택한 연작소설(story cycle)이라는 형식을 만나게 됩니다.

연작소설은 여러 편의 단편이 하나의 인물과 공간, 혹은 하나의 세계를 공유하면서 더 큰 이야기로 확장되는 형식입니다. 각각의 작품은 홀로 읽어도 충분하지만, 서로 연결되는 순간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의미가 생겨납니다. 『거지 소녀』 역시 「장엄한 매질」, 「스펠링」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이 로즈의 삶을 조금씩 비추며 하나의 긴 생애를 완성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먼로가 인생을 순서대로 보여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통의 성장소설이라면 유년기에서 청년기, 그리고 성년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먼로는 그런 방식을 택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독자가 꼭 알아야 할 순간만 남기고, 그 사이의 긴 시간을 과감히 비워 둡니다. 몇 년, 때로는 수십 년이 설명 없이 지나가지만 독자는 그 공백을 어색하게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설명되지 않은 시간이 인물의 삶을 더 깊고 넓게 상상하게 만듭니다.

이 점에서 먼로의 소설은 실제 인간의 기억과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날짜순으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의 어떤 여름날, 부모와 크게 다투었던 저녁, 처음 집을 떠나던 순간처럼 몇 개의 장면만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사이의 수많은 날들은 희미해지고, 기억은 중요한 순간만을 붙잡습니다. 먼로는 바로 그 기억의 방식을 소설의 구조로 가져옵니다.

그래서 『거지 소녀』를 읽는다는 것은 한 사람의 전기를 읽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기억 속을 천천히 걸어가는 일에 가깝습니다. 각각의 단편은 하나의 장면처럼 남고, 그 장면들이 쌓일수록 로즈라는 인물은 점점 입체적으로 살아납니다.

이 구조의 힘은 「장엄한 매질」과 「스펠링」을 함께 읽을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장엄한 매질」에서는 가족 안에서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던 플로가 중심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스펠링」에 이르면 그 강인했던 플로는 기억을 잃고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 되어 있습니다. 먼로는 그 변화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두 작품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시간의 무게를 느끼게 합니다.

이것이 연작소설의 가장 큰 미덕입니다. 뒤에 읽은 이야기가 앞의 이야기를 새롭게 바꾸어 놓습니다. 「장엄한 매질」만 읽었다면 플로는 폭력적이고 거친 계모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펠링」을 읽고 다시 돌아오면, 독자는 젊고 강인했던 플로의 모습 뒤로 언젠가 찾아올 쇠락까지 함께 보게 됩니다. 하나의 단편이 다른 단편의 의미를 다시 쓰는 것입니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보면 여기에는 중요한 배움이 숨어 있습니다. 인물의 삶을 모두 설명한다고 해서 더 깊은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순간을 선택하고, 어떤 시간을 비워 둘 것인가가 소설의 밀도를 결정합니다. 먼로는 생략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침묵 속에서 독자가 인물의 삶을 스스로 완성하도록 믿기 때문입니다.


2「장엄한 매질」과 「스펠링」은 왜 한 쌍의 이야기인가

『거지 소녀』를 처음 읽는다면 「장엄한 매질」과 「스펠링」이 특별히 연결된 작품이라는 사실을 놓치기 쉽습니다. 두 작품은 분위기도 다르고, 시간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어린 로즈가 살아가는 거칠고 숨 막히는 유년의 세계를 그리고 있고, 다른 하나는 중년이 된 로즈가 늙고 쇠약해진 플로를 마주하는 이야기입니다. 얼핏 보면 서로 다른 시기에 일어난 별개의 사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두 작품을 나란히 읽는 순간, 앨리스 먼로가 왜 『거지 소녀』를 장편이 아닌 연작소설로 구성했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됩니다. 「장엄한 매질」은 관계의 출발점이고, 「스펠링」은 그 관계가 오랜 시간을 지나 어디에 이르는지를 보여 주는 종착점입니다. 이 두 작품은 로즈와 플로라는 관계의 양 끝을 붙잡고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장엄한 매질」에서 플로는 집안의 공기를 지배하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거칠고 직설적인 말투를 쓰며, 로즈의 작은 반항도 그냥 넘기지 않습니다. 로즈와 언쟁이 벌어지면 아버지를 불러들이고, 결국 '매질'이라는 폭력으로 상황을 마무리합니다. 하지만 먼로는 이 장면을 단순히 폭력적인 계모와 불쌍한 아이의 이야기로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 사람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는 배우들처럼 움직입니다. 플로는 잘못을 고발하고, 아버지는 처벌을 집행하며, 로즈는 저항과 굴복 사이를 오갑니다. 폭력은 순간의 분노라기보다 가족 안에서 반복되어 온 하나의 의식처럼 그려집니다.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폭력 자체보다 관계의 구조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매질이 끝난 뒤 플로는 로즈에게 음식을 가져다줍니다. 만약 먼로가 폭력을 고발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면 이 장면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일부러 이 장면을 배치합니다. 독자는 혼란스러워집니다. 방금까지 폭력을 가능하게 했던 사람이 이제는 아이를 돌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짧은 장면 하나가 『거지 소녀』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사람은 하나의 얼굴만 가진 존재인가.

플로는 가해자인가, 아니면 보호자인가. 로즈는 피해자인가, 아니면 플로를 이해하려 애쓰는 딸인가. 먼로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서로 모순되는 감정을 동시에 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이 질문은 「스펠링」에서 더욱 깊어집니다.

시간은 누구도 같은 자리에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한때 로즈를 압도했던 플로는 기억을 잃어가고, 자신의 삶조차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노인이 됩니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은 로즈입니다. 플로를 요양원으로 보내야 할지, 끝까지 곁을 지켜야 할지 선택하는 위치에 선 것은 더 이상 플로가 아니라 로즈입니다.

이 장면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장엄한 매질」을 떠올립니다. 어린 로즈 앞에서 절대적인 힘을 행사했던 플로의 모습과, 모든 힘을 잃은 노년의 플로가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겹쳐 보입니다. 먼로는 그 사이의 수십 년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시간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독자는 두 작품 사이의 빈 시간을 스스로 채우며, 한 인간의 생애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상상하게 됩니다.

여기서 먼로가 보여 주는 것은 단순한 세월의 흐름이 아닙니다. 권력의 이동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아이의 삶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그 관계는 뒤집힙니다. 이제 자녀가 부모의 삶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장엄한 매질」과 「스펠링」은 바로 그 역할의 역전을 통해 가족이라는 관계가 얼마나 복잡한 시간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흥미로운 것은 로즈가 이 변화 앞에서 통쾌한 해방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녀는 죄책감과 책임감, 연민과 피로 사이에서 흔들립니다. 자신을 힘들게 했던 사람을 돌봐야 하는 마음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먼로는 이 감정을 미화하지도 않고, 도덕적인 결론으로 정리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복잡한 마음으로 남겨 둡니다.

이것이 『거지 소녀』를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많은 성장소설은 주인공이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얻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로즈는 과거를 지우지 못합니다. 웨스트 핸래티를 떠났지만 그곳은 끝내 로즈 안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플로를 미워했지만, 그 미움만으로 그녀를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장엄한 매질」과 「스펠링」은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사람은 과연 자신의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가.

앨리스 먼로의 대답은 조용하지만 분명합니다. 우리는 과거를 떠날 수는 있어도, 과거를 지운 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경험과 겹쳐지며 다른 의미를 만들어 냅니다. 「장엄한 매질」의 폭력은 「스펠링」의 돌봄을 만나 비로소 한 인간의 삶으로 완성됩니다.

바로 이 점에서 두 작품은 각각의 단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애를 양쪽에서 붙들고 있는 두 개의 기둥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로즈와 플로는 왜 살아 있는 인물인가

소설을 읽고 오래 기억나는 것은 사건보다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범죄를 다룬 소설을 읽고 나면 사건의 순서는 잊어버려도, 어떤 인물의 눈빛이나 말투, 오래 품고 있던 상처는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남습니다. 독자는 줄거리보다 사람을 기억하고, 결말보다 관계를 기억합니다.

앨리스 먼로의 『거지 소녀』도 그렇습니다. 책장을 덮고 나면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매질'이라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 사건을 견디던 어린 로즈의 침묵과, 거칠고 상스러운 말투 뒤에 묘한 생명력을 품고 있는 플로라는 인물입니다. 먼로는 특별한 사건으로 인물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물이 살아온 시간과 감정이 사건을 만들어 가도록 합니다. 그래서 독자는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오래 바라본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로즈는 가난한 소녀입니다. 그러나 먼로는 그녀를 단순히 '가난한 아이'로 그리지 않습니다. 로즈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가난 그 자체보다 자신의 출신을 의식하는 마음입니다. 웨스트 핸래티라는 작은 마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로즈의 자의식을 만들어 내는 공간입니다. 그녀는 사람들의 말투와 옷차림, 식탁의 분위기까지도 계급을 드러내는 신호처럼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다른 세계로 나아갈수록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더 예민하게 의식합니다.

이러한 수치심은 로즈를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만, 동시에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장학금을 받고, 배우가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한 뒤에도 웨스트 핸래티는 그녀 안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몸은 떠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곳을 기준으로 자신을 바라봅니다. 먼로는 계급을 거대한 사회문제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한 여성의 내면에 남은 감각과 기억을 통해 보여 줍니다. 그래서 독자는 로즈를 이해하기보다 먼저 공감하게 됩니다.

플로 역시 단순한 계모가 아닙니다. 처음 등장하는 그녀는 거칠고 직설적이며, 때로는 잔인할 만큼 냉정합니다. 하지만 플로를 오래 들여다볼수록 그녀에게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사소한 사건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바꾸어 들려주는 뛰어난 이야기꾼입니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을 관찰하는 감각과 삶을 이야기로 엮는 힘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로즈와 플로는 의외로 닮아 있습니다.

플로는 자신의 언어로 사람들의 삶을 다시 만들어 내는 사람이고, 훗날 배우가 된 로즈는 타인의 삶을 몸으로 연기하는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이야기로 세상을 표현하고, 다른 한 사람은 연기로 사람을 이해합니다. 로즈는 평생 플로에게서 벗어나려고 애쓰지만, 가장 깊은 곳에서는 그녀에게서 배운 감각을 품고 살아갑니다. 떠난다는 것은 완전히 끊어지는 일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는 일임을 먼로는 두 사람을 통해 보여 줍니다.

그래서 『거지 소녀』의 갈등은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닙니다. 로즈는 플로를 미워하지만 동시에 인정받고 싶어 하고, 플로는 로즈를 몰아붙이면서도 자기 방식대로 돌봅니다.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감정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두 인물은 끝까지 살아 움직입니다. 현실의 인간이 그렇듯, 그들은 한 문장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매우 중요한 배움입니다. 우리는 인물을 만들 때 성격을 먼저 정리하려고 합니다. '착하다', '냉정하다', '용감하다'처럼 몇 개의 단어로 인물을 규정하려 합니다. 그러나 먼로의 인물은 그런 방식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로즈는 용기와 두려움을 함께 가진 사람이고, 플로는 거침과 애정을 동시에 품은 사람입니다. 이 모순이야말로 인물을 살아 있게 만드는 힘입니다.

좋은 소설의 인물은 완벽해서 기억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순을 품고 있기 때문에 오래 기억됩니다. 독자는 실수하지 않는 사람보다 흔들리는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 줍니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떠나면서도 그리워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입니다.

앨리스 먼로는 인물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설명도, 변명도 하지 않은 채 인물들이 스스로 살아가도록 내버려 둡니다. 그래서 독자는 로즈와 플로를 평가하기보다 이해하려고 애쓰게 됩니다. 아마 이것이 먼로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그녀는 특별한 영웅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사람들을 끝내 잊을 수 없는 인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4 폭력과 돌봄은 왜 함께 존재하는가

『거지 소녀』를 읽으며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은 매질을 당하는 장면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장면이 끝난 뒤의 침묵입니다.

플로는 로즈를 벌하도록 만들었던 사람이지만, 그 일이 끝난 뒤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식사를 챙기고, 생활을 이어 갑니다. 어린 로즈는 그런 플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아프게 한 사람이 왜 다시 자신을 돌보는 것일까. 미워해야 할 사람인데, 왜 미워하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흔히 사람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나누려 합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어려울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앨리스 먼로는 그런 단순한 구분을 거부합니다. 그녀의 소설 속 사람들은 언제나 서로 다른 얼굴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상처를 주는 사람이기도 하고, 상처를 감싸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다정하지 않고, 미움 역시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플로는 끝내 '나쁜 계모'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세월이 흘러 「스펠링」에 이르면 상황은 완전히 뒤바뀝니다. 한때 집안을 휘어잡던 플로는 기억을 잃어가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 어려운 노인이 됩니다. 이제 선택해야 하는 사람은 로즈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플로가 로즈의 삶을 결정했다면, 노년에는 로즈가 플로의 삶을 결정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먼로는 이 역전을 극적인 화해로 마무리하지 않습니다. 감동적인 용서도, 눈물겨운 고백도 없습니다. 로즈는 여전히 복잡한 마음을 안고 있습니다. 플로를 보면 어린 시절의 상처가 떠오르지만, 동시에 그녀를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그 감정은 용서도 아니고 복수도 아닙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책임감과 연민, 그리고 쉽게 이름 붙일 수 없는 애틋함에 가깝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거지 소녀』는 성장소설을 넘어섭니다.

많은 성장소설은 과거를 극복하는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상처를 딛고 새로운 삶을 얻는 것이 성장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먼로는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그녀에게 성장은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닙니다. 과거를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로즈는 웨스트 핸래티를 떠났습니다. 배우가 되었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문장과 몸짓,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는 여전히 플로와 함께했던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떠난 장소는 멀어질 수 있지만, 한 사람을 만든 시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거지 소녀』가 오래도록 독자의 마음에 남는 이유입니다. 먼로는 우리에게 "누가 옳았는가"를 묻지 않습니다. 대신 "사람은 과연 한 가지 감정으로 다른 사람을 기억할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저을 뿐입니다.

우리가 오래 사랑한 사람은 미운 기억도 함께 남기고, 오래 미워했던 사람은 어느 날 문득 그리움으로 찾아오기도 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그렇게 모순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먼로는 그 모순을 해결하지 않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사실을 보여 줄 뿐입니다.

그래서 『거지 소녀』는 한 소녀의 성장기가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기억과 화해해 가는 긴 여정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은 로즈만의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떠나온 집이 있고, 잊고 싶었던 사람이 있으며,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얼굴이 있습니다. 먼로는 그 보편적인 경험을 놀라울 만큼 절제된 문장으로 우리 앞에 펼쳐 놓습니다.

책을 덮고 나면 독자는 로즈보다 먼저 자신의 삶을 떠올리게 됩니다. 어린 시절 미워했던 사람, 끝내 이해하지 못했던 가족, 오래 지나서야 다른 얼굴로 기억되는 누군가. 아마 그것이 위대한 소설의 힘일 것입니다. 작품이 끝난 자리에서 비로소 독자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말입니다.


창작자의 생각

소설을 쓰다 보면 자꾸 특별한 사람을 만들고 싶어 집니다. 남들과 다른 주인공, 강렬한 사건, 독자를 놀라게 할 반전이 있어야 좋은 소설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지 소녀』를 읽으며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앨리스 먼로는 우리 주변에서 한 번쯤 만났을 법한 사람들을 끝내 잊히지 않는 인물로 만들어 냅니다. 그녀의 인물들은 세상을 구하지도 않고, 극적인 운명을 살아가지도 않습니다. 다만 가족을 떠나고, 상처를 안고 살아가며, 시간이 흐른 뒤에야 누군가를 조금 이해하게 됩니다. 그 평범한 시간이 쌓여 한 사람의 생애가 되고, 그 생애가 독자의 마음속에 오래 머뭅니다.

특히 플로라는 인물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거칠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만 여겼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에는 그 사람 역시 자신의 삶을 버텨 낸 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소설은 누군가를 쉽게 용서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을 먼로는 보여 주었습니다.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결국 사람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줄거리보다 한 사람의 마음을 오래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고, 선과 악으로 나누기보다 서로 모순되는 감정을 함께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먼로의 인물들이 지금도 살아 있는 이유는 완벽해서가 아니라, 우리처럼 흔들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거지 소녀』를 덮으며 제 작업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특별한 영웅보다 오래 기억되는 사람을 쓰고 싶습니다. 독자가 이야기를 다 읽은 뒤에도 "저 사람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품게 하는 인물. 그것이 제가 소설을 쓰며 오래 배우고 싶은 앨리스 먼로의 문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