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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의 독서

앨리스 먼로 『거지 소녀』②|좋은 소설은 시간을 어떻게 기억으로 바꾸는가

by 들꽃 2026. 7. 24.

앨리스 먼로의 거지소녀 책의 겉표지르 들고 있는 이미지
앨리스 먼로의 거지소녀 책의 겉표지르 들고 있는 사진

들어가는 말|시간은 사라지지만 기억은 이야기가 된다

 사람은 시간을 순서대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몇 년을 함께 보낸 일보다 단 하루의 풍경이 더 오래 남기도하고, 오래전 들었던 한마디가 수십 년이 지나도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기도 합니다. 우리의 기억은 연대기가 아니라, 삶을 바꾸었던 몇 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앨리스 먼로는 이 기억의 방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작가입니다. 『거지 소녀』 연작 가운데 「장엄한 매질」과 「스펠링」은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작품입니다. 한 편은 어린 로즈가 폭력과 사랑이 뒤섞인 세계를 처음 배우는 이야기이고, 다른 한 편은 늙고 쇠락한 플로를 돌보며 같은 세계를 다시 바라보는 이야기입니다. 두 작품 사이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지만, 먼로는 그 시간을 거의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몇 개의 장면만을 남겨 둡니다.

그래서 독자는 시간의 흐름을 읽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축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장엄한 매질」과 「스펠링」을 중심으로, 먼로가 공간과 시간, 시점과 장면을 어떻게 사용하여 한 사람의 평생을 압축해 보여 주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웨스트 핸래티는 왜 단순한 배경이 아닌가|공간이 인물을 만드는 방식

「장엄한 매질」의 무대인 웨스트 핸래티는 단순히 로즈가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이 아닙니다. 이곳은 로즈가 평생 벗어나려 애쓰면서도 끝내 지울 수 없었던 출신의 기억이며, 그녀의 정체성을 만들어 낸 공간입니다. 먼로는 이 마을을 아름답게 묘사하거나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허름한 집, 좁은 골목, 이웃들의 말투와 시선, 그리고 집 안을 가득 채운 긴장감을 차곡차곡 쌓아 올립니다. 독자는 설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웨스트 핸래티를 이해하게 됩니다.

특히 이 공간은 계급의 지도를 형성합니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뉜 웨스트 핸래티와 핸래티는 단순한 지리적 구분이 아니라, 로즈가 느끼는 수치심과 동경을 상징합니다. 그녀가 배우가 되어 다른 세계로 나아가려는 욕망 역시 이 공간에서 비롯됩니다. 다시 말해, 로즈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성격이 아니라 그녀가 살아온 장소입니다.

창작을 하다 보면 공간을 배경으로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먼로는 공간을 하나의 인물처럼 다룹니다. 웨스트 핸래티는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로즈 안에서 계속 살아 움직이며, 그녀의 선택과 감정을 지배합니다. 독자는 결국 '어디에서 태어났는가'가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오래 남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공간은 사건이 벌어지는 무대가 아니라, 인물을 끊임없이 만들어 가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사실을 먼로는 이 작품을 통해 보여 줍니다.


2. 먼로는 왜 수십 년의 시간을 생략하는가|시간보다 기억을 선택하는 서사

「장엄한 매질」과 「스펠링」 사이에는 긴 세월이 놓여 있습니다. 어린 로즈는 어느새 중년이 되었고, 한때 가족을 압도하던 플로는 요양원으로 향하는 노인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앨리스 먼로는 그 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사건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감하게 비워 둡니다. 이 생략은 결핍이 아니라, 먼로가 선택한 가장 중요한 서사 전략입니다.

독자는 그 공백을 읽으며 로즈의 삶을 스스로 이어 붙입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어떻게 남아 있었는지, 왜 플로를 향한 감정이 미움만도 사랑만도 아닌 복잡한 연민으로 변했는지, 작품은 정답을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장엄한 매질」의 한 장면과 「스펠링」의 한 장면을 서로 마주 세워 놓습니다. 그 사이의 수십 년은 독자의 상상 속에서 완성됩니다.

먼로는 작품 안에서도 이러한 시간의 도약을 자연스럽게 사용합니다. 「장엄한 매질」에서 등장하는 햇 네틀턴은 훗날 백 살이 넘은 노인이 되어 라디오 인터뷰에 등장합니다. 한 사람의 삶이 몇 줄의 문장으로 뛰어넘어지는 순간, 독자는 시간의 흐름보다 기억의 지속성을 먼저 느끼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몇 년이 흘렀는지가 아니라, 어떤 사건이 끝내 잊히지 않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창작자에게 이 생략은 큰 배움이 됩니다. 모든 시간을 기록한다고 해서 인생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삶을 바꾸는 몇 개의 순간을 정확히 선택했을 때, 독자는 비어 있는 시간을 자신의 경험으로 채워 넣습니다. 먼로의 소설이 긴 여운을 남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녀는 시간을 쓰는 작가가 아니라, 시간이 기억으로 남는 방식을 쓰는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3. 왜 우리는 로즈의 기억을 자신의 기억처럼 느끼는가|밀착된 3인칭 제한 시점의 힘

「장엄한 매질」을 읽다 보면 독자는 어린 로즈의 공포를 바로 곁에서 경험합니다. 아버지의 손길이 올라가는 순간, 플로의 거친 목소리가 방 안을 메우는 순간, 로즈의 수치심은 마치 우리의 감정처럼 전해집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합니다. 너무 가까이 있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그 장면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보게 됩니다. 이 미묘한 거리감이 바로 앨리스 먼로의 서술 방식입니다.

먼로는 전지적인 화자의 위치에서 인물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1인칭 회고처럼 감정만 쏟아놓지도 않습니다. 그녀는 로즈에게 밀착한 3인칭 제한 시점을 유지하면서도,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성숙한 의식의 거리를 작품 속에 남겨 둡니다. 그래서 독자는 로즈와 함께 울고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그 장면을 해석할 여유를 갖게 됩니다.

이러한 시점은 「스펠링」에서 더욱 깊어집니다. 요양원으로 향하는 플로를 바라보는 로즈의 마음에는 미움도, 연민도, 죄책감도 함께 존재합니다. 먼로는 어느 하나를 정답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로즈가 느끼는 복잡한 감정만을 차분히 따라갈 뿐입니다. 독자는 그 빈자리에서 자신의 경험을 떠올립니다. 부모를 이해하게 된 순간, 떠나온 고향을 다시 생각하게 된 기억, 미워했던 사람을 뒤늦게 이해하게 된 시간을 자연스럽게 겹쳐 읽게 됩니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이 시점은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인물을 깊게 만드는 것은 많은 설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선을 끝까지 믿는 일입니다. 독자가 인물의 마음을 따라가게 만들되, 해석의 여백은 남겨 두는 것. 먼로는 바로 그 여백 속에서 독자의 기억이 작품과 만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4. 먼로는 왜 설명보다 장면을 믿는가|기억은 장면으로 남는다

「장엄한 매질」을 떠올려 보면 줄거리보다 먼저 하나의 장면이 기억납니다. 매질이 끝난 뒤, 플로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로즈에게 먹을 것을 내어놓는 순간입니다. 폭력 직후에 이어지는 그 작은 행동은 긴 설명보다 더 복잡한 감정을 남깁니다. 플로는 잔인한 사람인가,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인가, 아니면 두 모습이 동시에 존재하는 사람인가. 먼로는 답을 말하지 않습니다. 장면만 남겨 둡니다.

「스펠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양원에서 어떤 단어든 철자를 또박또박 말하는 노파의 모습은 단순한 주변 인물이 아닙니다. 기억을 잃어 가는 플로와 겹쳐지면서, 인간에게 끝까지 남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 상징이 됩니다. 먼로는 이 장면을 길게 해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독자는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플로의 현재와 로즈의 마음을 함께 이해하게 됩니다.

이처럼 먼로의 장면은 서로를 비추며 의미를 만들어 냅니다. 「장엄한 매질」의 어린 로즈와 「스펠링」의 중년 로즈는 수십 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독자의 기억 속에서는 하나의 연속된 삶으로 이어집니다. 장면이 시간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은 줄거리보다 오래 기억됩니다.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점을 오래 붙들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인물을 설명하고 주제를 해설하려 합니다. 그러나 먼로는 한 장면이 한 페이지의 설명보다 오래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독자의 기억에 남는 것은 교훈이 아니라, 설명되지 않은 채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한 장면입니다.


창작자가 배울 다섯 가지

「장엄한 매질」과 「스펠링」을 함께 읽으며 창작자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분명합니다.

첫째, 공간은 배경이 아니라 인물을 만드는 힘입니다. 웨스트 핸래티는 로즈의 출신과 수치심, 그리고 평생의 정체성을 만들어 냅니다.

둘째, 시간은 모두 보여 줄 필요가 없습니다. 유년기의 매질과 노년의 요양원을 나란히 놓는 것만으로도, 독자는 그 사이의 삶을 스스로 완성합니다.

셋째, 시점은 감정을 전달하는 기술입니다. 로즈에게 밀착한 3인칭 제한 시점은 독자가 그녀의 삶을 함께 살아가게 만듭니다.

넷째, 설명보다 장면을 믿어야 합니다. 플로가 음식을 내미는 장면과 요양원의 노파는 긴 해설 없이도 작품의 주제를 품고 있습니다.

다섯째, 독자의 해석을 믿어야 합니다. 먼로는 모든 의미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 침묵과 여백이 오히려 작품을 오래 살아남게 합니다.


창작자의 생각

「장엄한 매질」과 「스펠링」은 겉으로 보면 전혀 다른 시기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는 어린 로즈의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늙어 가는 플로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그러나 두 작품을 나란히 읽고 나면, 그 사이의 수십 년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먼로는 그 시간을 자세히 쓰지 않았지만, 독자는 이미 그 세월을 함께 살아낸 듯한 감각을 갖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앨리스 먼로 소설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사건을 크게 만들지 않습니다. 대신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장면 하나를 남깁니다. 어린 로즈가 맞았던 매질, 그 뒤에 건네진 음식, 그리고 요양원에서 플로를 바라보는 중년의 로즈. 이 몇 개의 장면만으로도 한 사람의 삶 전체가 독자의 기억 속에서 이어집니다.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독자에게 오래 남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합니다. 『거지 소녀』는 그 답을 거창한 반전이나 극적인 사건에서 찾지 않습니다. 한 사람을 끝까지 이해하려는 시선, 시간을 과감히 생략하는 용기, 그리고 독자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단 하나의 장면을 만드는 일. 그것이 앨리스 먼로가 보여 준 소설의 기술이며, 제가 이 두 작품에서 가장 깊이 배우고 싶은 창작의 원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