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노트4 줌파 라히리 『길들지 않은 땅』|좋은 소설은 어떻게 살아 있는 인물을 만드는가 소설을 읽다 보면 이상한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줄거리는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는데, 어떤 인물은 오래 남습니다. 실제로 만났던 사람처럼 그의 표정이 떠오르고, 말투가 기억나고, 그 사람이 했던 선택이 문득 생각납니다.왜 그럴까요.좋은 소설은 사건보다 먼저 사람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줌파 라히리의 「길들지 않은 땅」 역시 그렇습니다. 작품에는 극적인 사건도, 반전도 없습니다. 아내를 잃은 아버지가 딸 루마의 집에서 며칠을 보내는 이야기입니다. 줄거리만 옮겨 적는다면 몇 줄이면 끝날지도 모릅니다.그런데 작품을 덮고 나면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두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침묵과 루마의 망설임, 서로를 아끼면서도 끝내 가까워지지 못하는 거리감은 오래 마음에 머뭅니다. 독자는 그들의 삶을 모.. 2026. 7. 21. 김연수 『소설가의 일』 |소설은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다 들어가는 글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는 소설을 잘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작법서를 기대했다. 좋은 문장을 만드는 법, 인물을 설계하는 법, 이야기를 끌고 가는 기술 같은 것들을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난 뒤 오래 남은 것은 기술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 사람의 삶과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에 관한 질문이었다.우리는 흔히 소설을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김연수는 상상보다 먼저 이해를 이야기한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끝내 이해하려는 노력, 지나간 삶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 실패와 상처를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는 태도. 그래서 『소설가의 일』은 단순한 작법서가 아니라 인간을 오래 바라본 기록처럼 읽힌다.이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질문도 하나였다.'소설은 왜 사람을.. 2026. 7. 17.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2부|오리지널리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오리지널리티를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자신만의 시선과 경험에서 만들어지는 힘이라고 말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창작자의 입장에서 독창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문체와 기억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함께 살펴봅니다. 창작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질문 앞에 선다. '세상에 이미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나는 무엇을 새롭게 쓸 수 있을까?', '남들과 다른 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그래서 많은 예비 작가들은 독창적인 소재를 찾아 헤매거나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반전을 고민한다. 하지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오리지널리티란 특별한 소재를 발견하는 능력이 아니라, 같은 세상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2026. 7. 6.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부|소설가는 만들어지는 직업이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사람들은 흔히 재능부터 이야기한다. 풍부한 상상력, 뛰어난 문장력, 타고난 감수성이 있어야만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직 쓰기도 전에 스스로를 평가하며 포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그 오래된 질문에 조금 다른 답을 들려준다. 그는 소설가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오랜 시간 글을 쓰는 삶을 선택한 사람이라고 말한다.이 책은 소설 쓰는 기술을 설명하는 작법서가 아니다. 오히려 한 사람이 어떻게 소설가라는 직업을 살아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에 가깝다. 그래서 이 책은 글쓰기 방법보다 창작자의 태도를 먼저 생각하게 만든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어떻게 써야 하는가'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더.. 2026. 7. 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