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는 말
좋은 소설을 읽고 나면 줄거리보다 먼저 하나의 장면이 오래 남는다. 오래된 신문을 뒤적이는 손, 도서관 창가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 이름도 없이 책장 속에 꽂혀 있는 양장본 한 권. 이상하게도 그 장면들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소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장면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정소현의 「양장 제본서 전기」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도 이것이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존재를 증명하는가?' 작가는 이 질문을 철학자의 언어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이 자신의 출생을 확인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오래된 신문을 찾는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독자는 존재론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행동을 따라가다가 어느새 존재의 의미를 고민하게 된다.
세종사이버대학교 강의에서도 이 작품을 읽을 때 가장 먼저 살펴볼 것으로 '소설을 이루는 요소'와 '추상적인 것을 어떤 구체적인 사건과 소재로 풀어내는가'를 제시한다. 나는 이 두 가지가 사실 하나의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은 추상을 직접 말하는 예술이 아니라, 추상을 사건과 사물로 번역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1. 소설은 사건보다 먼저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양장 제본서 전기」를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사건보다 설정이 먼저 독자를 설득한다는 사실이었다. 작품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공간에서 시작하지만, 곧 '사람이 책이 될 수 있다'는 기묘한 규칙을 독자 앞에 내놓는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독자는 이상하게도 그 설정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세계 안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궁금해하며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강의교안에서도 이 작품의 핵심으로 '작가가 초반에 만들어 놓은 소설적 설정이 작품 전체를 지배한다'고 설명한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소설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려한 사건이 아니라 독자가 믿을 수 있는 규칙을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판타지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비현실을 빌려온다. 「양장 제본서 전기」에서 사람이 책이 되는 설정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는 책이 되는 세계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기억으로만 존재하게 되는 삶을 보여주려 한다. 설정은 목적이 아니라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가장 정교한 장치인 것이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이 부분은 오래 기억하고 싶은 대목이다. 우리는 종종 독자를 놀라게 할 사건을 먼저 떠올리지만, 정소현은 하나의 설정으로 독자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놓는다. 그 순간부터 독자는 현실의 기준이 아니라 작가가 만든 세계의 기준으로 인물을 바라보게 된다. 이것이 좋은 소설이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첫 번째 힘이라고 생각한다.
2. 추상적인 감정은 왜 사물의 형태를 빌려야 하는가
정소현의 소설을 읽으며 가장 많이 밑줄을 긋게 되는 것은 의외로 감정을 설명하는 문장이 아니다. 오히려 오래된 신문, 도서관, 양장 제본, 책장 같은 사물들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배경처럼 보이지만, 작품이 진행될수록 그것들은 모두 하나의 상징으로 연결된다.
교안에서는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소설에서 드러내고 싶은 추상적인 것들을 어떤 구체적인 사건과 소재로 풀어내는지' 살펴보라고 한다. 이 질문이야말로 창작자가 가장 오래 붙들어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존재'라는 단어를 반복하지 않는다. 대신 출생기록을 찾는 행동을 보여 준다. '기억'이라는 개념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오래된 신문과 도서관을 등장시킨다. '영원히 남고 싶은 욕망'도 직접 말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을 양장본으로 제본하는 기묘한 서비스를 만들어 낸다. 추상적인 감정은 모두 사건과 사물의 언어로 번역된다.
나는 여기서 소설과 에세이의 차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에세이는 생각을 설명하는 글이라면, 소설은 생각을 눈앞의 장면으로 바꾸는 글이다. 외로움을 쓰는 대신 빈 의자를 보여 주고, 상실을 말하는 대신 닫힌 문 하나를 보여 주는 것처럼 말이다. 「양장 제본서 전기」는 그 원리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 주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창작자로서 이 작품이 남긴 가장 큰 배움은 분명하다. 앞으로 어떤 감정을 쓰고 싶을 때도 먼저 그 감정을 설명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그 감정을 대신 말해 줄 하나의 사물과 하나의 사건을 찾아야 한다. 결국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설명이 아니라, 오래 기억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2. 존재는 누군가 기억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처음에는 이 작품이 한 사람의 출생을 추적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오래된 신문을 뒤지고, 기록을 찾아다니는 모습은 자신의 시작을 확인하려는 여정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내가 붙잡게 된 것은 출생의 비밀이 아니라 '관계'였다.
'나'를 가장 잘 알아야 할 사람들은 오히려 '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 기억을 잃어 가는 엄마도, 오랜 시간 떨어져 살아온 아버지도 '나'의 존재를 선명하게 붙잡지 못한다. 그 장면들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기억될 때 비로소 존재를 확인받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 작품의 슬픔은 거대한 사건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부모와 자식이 극적으로 화해하는 장면도 없고, 숨겨진 진실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평범한 순간들이 조금씩 쌓이면서 독자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일상의 균열이야말로 이 소설이 만들어 내는 가장 큰 비극이다.
소설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가장 눈여겨본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인물은 혼자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고, 누구에게 잊히고, 누구를 그리워하는가에 따라 한 인물의 삶이 만들어진다. 결국 인물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성격표가 아니라 관계의 결이다. 정소현은 그것을 거창한 설명 없이 조용한 장면들로 증명해 보인다.
3. 욕망은 왜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가
좋은 소설 속 인물은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 아니다. 사건이 인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방향이 바뀌기 때문에 인물도 달라진다. 「양장 제본서 전기」 역시 그런 작품이다.
이야기의 초반에서 '나'는 자신의 시작을 알고 싶어 한다.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를 확인하려는 마음이 이야기를 움직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마음은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기록을 찾는 일이 존재를 증명해 주지 못하고, 가족과의 관계 역시 삶의 빈자리를 메워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마주하면서 욕망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다.
내가 흥미롭게 읽은 부분도 바로 여기였다. 많은 소설은 처음의 목표를 이루는 과정으로 끝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목표를 이루기보다 목표 자체가 변해 간다.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던 사람은 어느 순간 존재를 지우고 싶어 하고, 사라지고 싶어 하던 사람은 마지막에는 또 다른 방식으로 남기를 선택한다.
바로 이 변화 때문에 '사람이 책이 된다'는 설정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작품의 필연이 된다.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던 상상이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가장 자연스러운 결말처럼 다가온다. 인간은 몸으로만 살아남는 존재가 아니라, 기억과 기록 속에서도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 전체가 조금씩 준비해 왔기 때문이다.
창작자로서 이 작품에서 가장 크게 배운 점도 여기에 있다. 소설은 사건 하나로 독자를 놀라게 하는 장르가 아니다. 인물의 마음이 아주 조금씩 움직이는 과정을 끝까지 따라가게 만드는 장르다. 독자가 마지막 장을 덮으며 감탄하는 이유는 반전 때문이 아니라, 인물의 변화가 어느새 자신의 감정과도 닿아 있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4.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남는가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오래 남는 것은 '사람이 책이 된다'는 독특한 설정이 아니다. 내게 오래 남은 것은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남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우리는 흔히 존재를 몸으로만 생각한다. 살아 있고, 숨 쉬고, 이름이 있으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작품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몸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기억은 다른 형태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장 제본된 책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감정, 관계를 품은 또 하나의 삶의 형태처럼 읽힌다.
정소현은 이 질문을 철학처럼 설명하지 않는다. 오래된 신문을 찾는 손길, 도서관의 조용한 풍경, 부모와 엇갈리는 기억, 그리고 책이 되는 상상까지. 서로 다른 장면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독자는 마지막에 이르러 비로소 하나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이 작품의 힘이다. 작가는 답을 먼저 말하지 않고, 장면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답에 다가가도록 만든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좋은 소설은 거대한 사건보다 하나의 질문을 끝까지 붙드는 힘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출생을 확인하려던 이야기였지만, 마지막에는 기억과 존재를 묻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처음과 끝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유는 작가가 사건을 키운 것이 아니라 질문을 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 점을 오래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독자를 오래 붙잡는 것은 놀라운 반전이 아니라, 한 가지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작가의 시선이다. 「양장 제본서 전기」는 그 사실을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다.
창작자의 노트
정소현의 「양장 제본서 전기」를 읽으며 가장 오래 메모한 것은 '사람이 책이 된다'는 설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좋은 소설은 추상적인 생각을 설명하지 않고, 구체적인 장면으로 보여 준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소설을 쓰면서 '외로움', '상실', '불안' 같은 단어를 쉽게 사용한다. 하지만 독자의 마음에 오래 남는 것은 그런 단어가 아니라, 그 감정을 대신하는 장면이다. 빈 의자 하나, 오래된 사진 한 장, 이름이 적힌 책 한 권이 때로는 수십 줄의 설명보다 더 깊은 울림을 만든다.
이 작품 역시 존재를 철학적으로 논하지 않는다. 오래된 신문을 찾는 행동, 기억이 어긋나는 가족, 그리고 한 권의 양장본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묻는다. 추상적인 질문을 구체적인 장면으로 바꾸는 순간, 소설은 독자의 머리가 아니라 마음속에 남게 된다.
이번 작품을 읽으며 다시 확인한 것도 바로 그것이다. 좋은 소설은 독자에게 정답을 알려 주지 않는다. 대신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질문 하나를 건넨다. 그리고 그 질문은 책을 덮은 뒤에도 독자의 삶 속에서 계속 자라난다.
나는 앞으로 소설을 쓸 때도 이 작품을 떠올릴 것 같다. 설명을 줄이고 장면을 더 오래 바라보는 일, 추상을 말하기보다 사물을 통해 감정을 드러내는 일, 그리고 독자가 스스로 질문을 발견하도록 한 걸음 물러서는 일. 그것이 「양장 제본서 전기」가 내게 남긴 가장 큰 배움이었다.
'창작자의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조해진 『빛의 호위』②|기억은 어떻게 한 사람을 끝까지 살게 하는가 (1) | 2026.07.28 |
|---|---|
| 조해진 빛의 호위|사람은 어떻게 서로의 삶을 비추는가 (1) | 2026.07.25 |
| 앨리스 먼로 『거지 소녀』②|좋은 소설은 시간을 어떻게 기억으로 바꾸는가 (0) | 2026.07.24 |
| 앨리스 먼로 『거지 소녀』①|평범한 삶은 어떻게 위대한 소설이 되는가 (0) | 2026.07.23 |
| 줌파 라히리 『길들지 않은 땅』|좋은 소설은 어떻게 살아 있는 인물을 만드는가 (0) | 2026.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