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세 번 바꿔봤습니다만」의 초고를 완성했을 때 나는 나름대로 미래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필요한 엄마를 로봇으로 빌려 쓰는 세상. 지금은 없는 일이니 당연히 미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초고를 가지고 동화 합평을 했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었다.
“설정은 미래인데 배경이나 사람들의 생각은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비슷한 의견이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나왔다.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다.
로봇 엄마가 등장하는데 왜 미래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까.
하지만 원고를 다시 읽으면서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로봇 하나를 등장시킨다고 미래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이 동화를 구상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로봇 엄마’였다.
어떤 로봇 엄마가 있을까. 아이가 공부를 잘하도록 관리해주는 로봇도 있을 것이고, 아이와 신나게 놀아주는 로봇도 있을 것이다. 건강과 생활을 꼼꼼하게 챙겨주는 로봇도 있을 수 있다.
나는 그런 로봇의 기능과 성격을 만드는 데 많은 관심을 쏟았다.
그러다 보니 정작 그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아이의 세상은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다.
미래에도 학교는 지금과 똑같을까.
병원에 가는 방법도 같을까.
사람들은 지금처럼 휴대전화를 들고 다닐까.
음식은 어떻게 만들고, 필요한 물건은 어떻게 받을까.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떻게 만나고 이야기할까.
로봇은 미래에서 데려왔는데 그 로봇이 들어가 사는 집과 학교와 동네는 여전히 현재에 머물러 있었다.
합평에서 들었던 말이 그제야 이해되었다.
미래의 물건 하나를 이야기 속에 가져다 놓는 것과 미래의 세계를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미래의 아이는 어떤 하루를 살까
그때부터 생각의 방향을 조금 바꾸었다.
‘미래에는 어떤 신기한 기계가 생길까?’만 생각하지 않고 ‘그 시대를 사는 아이의 하루는 지금과 무엇이 다를까?’를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고, 친구를 만나고, 밥을 먹고, 아프면 치료를 받고, 필요한 물건을 사고,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
아이의 하루를 따라가며 하나씩 질문해 보았다.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의료 기술은 얼마나 달라질까.
집 안에서는 어떤 기계를 사용하게 될까.
물건을 주문하면 누가 가져다줄까.
사람과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연락하게 될까.
생각해보니 미래를 상상한다는 것은 아주 거창한 도시 하나를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한 아이가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살아가는 방식을 상상하는 일이었다.
상상만으로는 부족해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문제는 내가 미래를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직 오지 않은 세상을 누가 정확히 알 수 있겠는가.
더구나 나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자리보다 이제는 할머니의 자리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상상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미래의 학교와 교육은 어떻게 달라질지, 의료 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할지, 가정에서 사용하는 기술은 어떻게 바뀔지, 사회 시스템과 사람들의 생활환경은 어떤 방향으로 변해갈지를 찾아보았다.
자료를 읽다 보면 새로운 상상이 생겼다.
한 가지 기술을 알게 되면 ‘그렇다면 아이들은 이것을 어떻게 사용할까?’라는 질문이 생겼고, 그 질문이 다시 장면으로 이어졌다.
막연하게 상상할 때보다 미래의 모습이 조금씩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SF를 쓸 때 자료조사는 상상을 방해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상상이 갈 수 있는 길을 넓혀주는 일이었다.
조사한 것을 모두 집어넣고 싶어졌다
자료를 찾기 시작하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찾아본 것이 아까웠다.
미래 의료에 관한 내용을 읽으면 그것을 작품에 넣고 싶었고, 새로운 기술을 알게 되면 그것도 보여주고 싶었다.
‘이만큼 조사했으니 독자에게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생겼다.
하지만 그렇게 하나씩 넣다 보면 동화가 이야기라기보다 미래 기술을 설명하는 글처럼 변할 수 있었다.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미래 기술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그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였다.
그래서 다시 덜어내야 했다.
자료는 많이 찾아도 작품에는 필요한 만큼만 남기는 것.
그것도 퇴고의 일부였다.
미래 기술을 설명하지 않고 사용하게 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미래의 장치를 길게 설명하지 않으려고 했다.
대신 나율이가 그것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손목에 착용하는 스크린을 사용하고, 자동으로 음식을 만드는 장치가 생활 속에 있고, 홀로그램을 보거나 드론을 통해 물건을 받는 식이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에게는 그런 것들이 특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매번 휴대전화를 사용할 때마다 ‘이것은 무선통신 기술을 이용해 정보를 주고받는 기계다’라고 설명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래의 아이에게 손목 스크린이나 드론 배송이 일상이라면 그 아이도 굳이 놀라지 않을 것이다.
이 생각은 미래 배경을 쓰는 방법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작가에게는 신기한 미래 기술이어도 작품 속 인물에게는 평범한 일상일 수 있다.
그 차이를 잊지 않으려고 했다.
미래를 보여주는 것은 기계만이 아니었다
자료를 찾으면서 또 하나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
미래가 달라진다면 기계만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족의 모습도 달라질 수 있고, 아이를 돌보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학교와 병원의 역할도 달라질 수 있고,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나 생활방식도 변할 것이다.
「엄마 세 번 바꿔봤습니다만」을 처음 구상할 때는 로봇이라는 기술에 먼저 눈이 갔다.
하지만 고쳐 쓰면서 내가 정말 상상해야 하는 것은 로봇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 엄마를 돈을 주고 빌릴 수 있는 사회라면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가정마다 필요한 기능을 선택할 수 있다면 돌봄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
기술이 사람의 일을 대신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면 아이에게 필요한 돌봄도 모두 대신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생기면서 미래 배경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이야기의 주제와도 연결되기 시작했다.
합평은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보여주었다
혼자 원고를 읽을 때는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미 머릿속에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고에 몇 줄만 써놓아도 나는 그 뒤에 있는 세상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독자는 달랐다.
내 머릿속을 볼 수 없었다.
내가 상상했다고 해서 원고에 그 세계가 만들어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합평을 하면서 그것을 알게 되었다.
“미래인데 현재 같다”는 짧은 지적 하나 때문에 원고의 몇 문장을 고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학교를 다시 생각했고, 병원을 생각했고, 집 안의 생활을 생각했고, 사람들이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까지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결국 한마디의 합평이 작품의 세계 전체를 다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합평을 받는다고 모두 고쳐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합평을 하다 보면 여러 의견을 듣는다.
어떤 사람은 좋다고 한 부분을 다른 사람은 빼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모든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하지만 같은 부분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해서 나온다면 한 번쯤 원고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 말대로 무조건 고치라는 뜻은 아니다.
왜 독자가 그렇게 느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
그것이 더 중요했다.
이번 작품에서 여러 사람이 미래 배경에 대해 비슷한 느낌을 말했다면, 그곳에는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 이유를 찾아가는 것이 결국 퇴고였다.
SF동화를 쓰며 배운 것은 ‘미래의 일상’이었다
처음에는 SF동화를 쓰려면 기발한 상상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로봇을 만들고, 신기한 기계를 등장시키고, 먼 미래의 세상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거대한 미래 도시보다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이 있다.
그곳에 사는 아이가 오늘 아침 무엇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는가.
학교에서는 무엇을 하고, 친구와 어떻게 이야기하고, 배가 고프면 무엇을 먹고, 아프면 어떻게 치료받고, 저녁에는 누구와 시간을 보내는가.
그 평범한 하루가 지금과 조금씩 달라질 때 비로소 미래가 이야기 속에서 살아나는 것 같다.
「엄마 세 번 바꿔봤습니다만」을 쓰면서 내가 가장 어려워했던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
로봇 엄마를 상상하는 것보다 로봇 엄마가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는 일이 더 어려웠다.
그리고 그 사실을 처음 알려준 것은 합평에서 들었던 한마디였다.
“미래인데 생각과 배경은 현재 같아요.”
처음에는 아픈 지적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고마운 말이었다.
그 말을 듣지 않았다면 로봇만 미래에서 온 채 나머지는 현재에 머물러 있는 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한 편의 동화를 고친다는 것은 틀린 문장을 바로잡는 일만은 아니었다.
때로는 내가 만들어놓은 세계를 의심하고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번 원고를 통해 하나를 배웠다.
미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미래의 물건을 상상하는 일이 아니라, 그 물건과 함께 살아갈 사람의 일상을 상상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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