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괜히 설렌다
봄이 되면 괜히 마음이 설렌다.
마치 봄처녀라도 된 듯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먹거리를 찾아 나선다. 밭둑이며 산기슭이며 눈길이 바빠진다.
오십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연의 풀들이 먹거리가 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어릴 적 쑥과 냉이를 캐 본 기억은 있다. 하지만 들과 산에 자라는 많은 풀들이 먹을 수 있다는 건 책에서나 본 이야기였다.
실제로 뜯어 먹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시골에 살아도 쑥과 냉이, 조금 더 나가면 뽕잎 정도가 내가 아는 나물의 전부였다.
그러다 십여 년 전, 본격적으로 귀농을 하면서 봄이 달라졌다.
봄이면 나물을 뜯겠다며 산으로 오르고, 들녘에 쪼그리고 앉아 하나하나 뜯는 재미에 빠졌다.
지금 생각하면 봄이 기다려지는 첫 번째 이유는 아마 이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봄을 먹는다는 것
이른 봄이 되면 제일 먼저 달래와 원추리, 머위가 얼굴을 내민다.
달래는 여기저기 들녘을 다니며 호미로 캐는 재미가 쏠쏠하다. 달래무침, 달래된장찌개, 달래장을 만들어 비빔밥에 쓱쓱 비벼 먹으면 향긋한 봄이 입안 가득 번지는 듯하다.
원추리는 특별히 강한 맛이 있는 건 아니지만, 데쳐 들기름에 살짝 무치거나 된장찌개에 넣으면 묘하게 잘 어울린다.
밋밋한 된장찌개가 조금 더 살아나는 느낌이다.
머위는 막 올라왔을 때가 제맛이다. 데쳐 된장과 고추장을 조금 넣어 무치면 싸하고 쌉싸름한 맛이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깨운다.
쑥은 또 어떤가.
쑥버무리, 쑥밥, 쑥튀김까지. 해마다 잊지 않고 챙겨 먹는 봄의 추억이다.
가장 기다려지는 건 역시 화전이다.
진달래 화전으로 시작해 제비꽃까지 얹어 부치고 있노라면, 봄이 식탁 위에 내려앉은 것만 같다.
이렇게 봄을 뜯고, 먹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재미가 참 좋다.
나물을 뜯다 보면 나를 만난다
그런데 봄이 좋은 이유는 먹거리 때문만은 아니다.
나물을 뜯다 보면 어느 순간 나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든다.
겨울 내내 우중충하던 세상 속에서 파릇파릇 올라오는 새싹들은 어여쁘고 앙증맞기까지 하다.
거기에 그것들을 먹거리라는 이름으로 뜯어야 하니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나하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뜯는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다.
한참 뜯다 보면 마음이 슬그머니 달라진다.
‘이건 아버지가 좋아하셨는데 친정에 보내면 좋겠다.’
‘미국에서 나물 못 먹는 언니가 왔으니 이것저것 해 먹여야지.’
‘몸 약한 친구한테 보내면 좋아하겠네.’
‘삶아서 냉동해 놨다가 딸 오면 먹여야겠다.’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손이 바빠진다.
앗.
또 욕심이다.
모든 이유는 그럴듯하지만, 결국 욕심을 합리화하려는 내 모습을 만나게 된다.
봄마다 어김없이.
그래도 나는 그런 나를 보며 슬며시 웃는다.
그리고는 주섬주섬 챙겨 산을 내려온다.
그래서 봄은 늘 기다려진다
그때그때 먹을 만큼만 뜯어 건강한 밥이 되어 준 생명들에게 감사하며 먹고,
나도 누군가의 밥이 되어 주자고 다짐해 본다.
물론 그 다짐이 늘 완벽하지는 않다.
봄이 오면 또 욕심 많은 나를 만나게 될 테니까.
그래도 괜찮다.
그렇게 조금 욕심내고, 조금 미안해하고, 조금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 사는 일 아닐까.
그러니 어찌 봄에 설레지 않겠는가.
봄이여.
올해도 내게로 오라.
머위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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