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한 여자아이를 만났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는 아이였다. 사춘기가 조금 일찍 찾아왔고, 그 시기를 꽤 힘겹게 지나고 있었다.
할머니와 자주 부딪쳤다. 손녀를 걱정하고 보호하려는 할머니의 마음이 지나칠 때도 있었다. 친구 관계에까지 할머니가 개입하면서 아이는 또래 관계에서도 조금씩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가족 사정도 복잡했다. 부모와 떨어져 조부모와 생활하면서 아이는 어린 나이에 여러 가지 마음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 아이를 지켜볼 때면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 그 아이에게는 아주 잘하는 것이 있었다.
버나였다.
버나를 무척 잘 돌렸고, 마을 축제나 대회에 나가면 사람들의 눈길을 끌 만큼 잘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힘든 일이 많은 아이지만, 자신이 잘하는 것만큼은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좋겠다고.
그 마음에서 첫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실제 이야기를 쓰면 좋은 동화가 될 줄 알았다
그때는 동화를 처음 쓰던 때였다.
실제로 내가 보고 들은 이야기이니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도 알고 있었고, 할머니도 알고 있었고, 그 아이가 살아가는 환경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내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그대로 쓰면 진솔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초고를 완성해놓고 보니 실제 생활과 너무 가까웠다.
나는 그것을 처음에는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직접 만난 아이였기 때문에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이미 이유를 알고 있었고, 할머니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합평에 원고를 내놓자 전혀 다른 이야기가 돌아왔다.
“동화 같지 않아요.”
“이야기가 너무 어두워요.”
그리고 마음에 가장 걸렸던 말도 있었다.
“할머니가 너무 부정적으로 그려져 있어요.”
첫 동화 합평은 생각보다 호되었다.
사실대로 썼는데 왜 문제가 되었을까
처음에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없는 일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아이와 할머니 사이에는 갈등이 있었고, 친구 관계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나는 이야기를 만든 것이 아니라 내가 본 현실을 원고에 옮기는 데 너무 가까이 가 있었다.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해서 모두 동화에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현실에서는 여러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가족 문제도 있고, 친구 문제도 있고, 학교생활도 있고, 한 사람에게 좋은 모습과 미운 모습이 함께 있다.
그것을 모두 원고 안으로 가져오니 이야기는 무거워졌다.
특히 할머니와 아이의 갈등을 그대로 따라가다 보니 할머니는 자꾸 아이를 힘들게 만드는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현실에서 알고 있던 할머니는 그런 한쪽 모습만 가진 사람이 아니었는데, 원고에서는 그렇게 읽혔다.
사실을 그대로 쓴다고 해서 그 사람을 제대로 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무엇보다 실제 아이가 너무 잘 보였다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원고를 읽으면 내가 누구를 모델로 삼았는지 주변 사람들이 알아볼 수도 있었다.
가족의 모습과 아이가 처한 상황, 아이가 잘하는 것까지 현실과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제야 걱정이 생겼다.
나는 아이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동화를 썼지만, 정작 아이가 이 글을 읽는다면 어떨까.
자신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났다고 느끼지는 않을까.
가족들은 또 어떻게 느낄까.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해서 실제 사람의 삶을 그대로 가져다 써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현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한 사람을 여러 사람으로 흩뜨렸다
처음에는 실제 아이를 조금 바꾸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수정할수록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주인공에게 실제 아이 한 사람만을 담지 않기로 했다.
도서관에서 만났던 여러 아이들의 모습과 말투, 성격을 조금씩 가져오고 거기에 내가 상상한 부분을 섞기 시작했다.
한 아이에게서 시작했지만 더 이상 그 아이와 똑같은 아이가 아니도록 만들었다.
가족도 바꾸었다.
작품 속 엄마의 배경을 새롭게 설정했고, 할머니 역시 처음 원고에서처럼 갈등만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손녀를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는 조금 더 너그러운 인물로 바꾸었다.
친구도 새롭게 만들었다.
주인공과 비슷한 점이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가정환경에서 살아가는 아이를 만들어 두 아이가 서로를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처음에는 실제 아이의 주변을 옮겨놓았던 이야기가 수정할수록 조금씩 허구의 세계가 되어갔다.

동생을 빼고 친구를 살렸다
「엄마 세 번 바꿔봤습니다만」에서도 나중에 비슷한 선택을 했지만, 「버나 소녀」를 고칠 때도 인물을 덜어내는 과정이 있었다.
처음에는 실제 생활에서 보았던 가족관계를 따라 동생도 등장시켰다.
하지만 이야기를 고치면서 동생을 빼기로 했다.
대신 주변 친구의 역할을 더 살렸다.
동생이 사라진 자리에 단순히 빈자리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친구와의 관계가 더 중요해졌고, 주인공이 또래 아이들 속에서 어떤 마음을 갖는지도 더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첫 동화를 쓰면서 나는 실제 인물이 있으니 그 사람들을 모두 등장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동화 속 인물은 실제 가족관계에 맞춰 존재할 필요가 없었다.
이야기에 필요한 사람이 남아야 했다.
「할머니 때문이야」에서 「버나 소녀」로
제목도 처음과 완전히 달라졌다.
첫 제목은 「할머니 때문이야」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제목만 봐도 초고의 시선이 어디에 있었는지 보인다.
아이의 힘든 상황과 할머니와의 갈등에 시선이 많이 가 있었다.
모든 것이 할머니 때문인 것처럼 읽힐 수도 있는 제목이었다.
하지만 원고를 고치면서 내가 정말 쓰고 싶었던 것은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할머니를 탓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한 아이에게도 자신이 잘하는 것이 있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를 조금 더 자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제목도 갈등이 아니라 아이에게로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제목이 「버나 소녀」가 되었다.
제목을 바꾸고 나니 이상하게 이야기의 중심도 다시 보였다.
할머니가 아니라 아이였다.

실제 사람은 이야기의 출발점이지 완성된 인물이 아니었다
「버나 소녀」는 내가 처음 쓴 동화였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많았다.
실제 이야기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고, 사실적으로 쓰면 진실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첫 합평과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실제 사람에게서 이야기를 시작할 수는 있다.
그 사람의 한마디가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어느 날 보았던 표정이나 행동 하나가 오래 마음에 남아 동화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을 그대로 작품 속으로 데려오는 순간에는 조심해야 했다.
현실의 한 사람에게는 내가 모르는 삶이 있고, 내가 본 모습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실제 사람에게서 시작하더라도 그 사람을 그대로 옮겨놓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격을 바꾸고, 가족관계를 바꾸고, 여러 사람의 특징을 섞고, 때로는 없던 인물을 만들고 실제 있었던 사람을 지운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모델이 되었던 실제 사람은 조금씩 멀어지고 새로운 인물이 태어난다.
첫 동화가 가르쳐준 것
「버나 소녀」를 처음 쓸 때 내가 바랐던 것은 단순했다.
힘든 사춘기를 보내고 있던 그 아이가 자신이 잘하는 것을 바라보았으면 했다.
자신에게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 만큼 잘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했다.
그 마음은 여러 번 원고를 고치는 동안에도 버리지 않았다.
대신 많은 것을 바꾸었다.
동생을 빼고 친구를 살렸고, 엄마와 할머니의 모습을 바꾸었다. 실제 한 아이의 성격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섞었고, 제목도 「할머니 때문이야」에서 「버나 소녀」로 바꾸었다.
처음의 사실적인 이야기는 그렇게 조금씩 동화가 되어갔다.
그리고 첫 동화를 쓰면서 아주 중요한 것을 하나 배웠다.
현실에서 만난 사람은 이야기의 씨앗이 될 수 있지만, 그 사람의 삶 자체가 내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
작가는 그 씨앗에서 출발해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야 했다.
돌아보면 합평에서 호되게 들었던 말들이 당시에는 속상했지만, 그 말들이 없었다면 나는 실제 아이의 삶과 내가 만든 이야기 사이에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한지 오래 알지 못했을 것 같다.
「버나 소녀」는 내게 첫 동화이면서, 현실의 사람을 어떻게 허구의 인물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처음 배운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실제 사람에게서 이야기가 시작될 때면 스스로에게 한 번 더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이 사람을 그대로 옮겨 쓰고 있는가, 아니면 이 사람에게서 시작된 새로운 인물을 만들고 있는가.
그 질문은 「버나 소녀」를 쓰던 때부터 지금까지 내 원고 한쪽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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