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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의 독서

조해진 『빛의 호위』②|기억은 어떻게 한 사람을 끝까지 살게 하는가

by 들꽃 2026. 7. 28.

조햬란의 빛의호위 책 표지
조해진의 빛의호위 책 표지

들어가는 말|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가는가

내가 조해진의 『빛의 호위』를 처음 읽을 접하게 된 것은 문예창작학과 편입하면서 교재로 나왔던 책이었다. 60살이 되면서 하던 일을 정리하게 되니 시간 재벌이 되어 무엇을 하며 지내야 할까? 고민하다 문예창작학과에 편입을 하여 공부하게 되었다 그때 현대소설 분석과 창작기법이라는 과목을 공부하며 만나게 책이었다. 그때는 한 권 한 권이 한 편의 여행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빛의 호위는 뉴욕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낯선 사람을 만나고, 다큐멘터리를 보고, 길을 걷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품을 덮고 나면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도시도, 여행도 아니다. 한 사람의 삶을 끝까지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표제작 「빛의 호위」의 중심에는 알마 마이어라는 실존 인물이 있다. 그러나 조해진은 그녀를 영웅으로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한 사람의 삶이 또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전해지는지, 그리고 기억이 어떻게 시간을 건너 새로운 삶을 비추는지를 이야기한다. 작품 속 화자가 뉴욕에서 권은을 만나고, 다큐멘터리를 보고, 다시 빛으로 일렁이는 거리를 걷는 과정은 단순한 여행의 동선이 아니라 기억을 이해해 가는 여정이다.

이번 글에서는 표제작 「빛의 호위」를 중심으로 작품 속 장면들이 어떻게 하나의 의미로 연결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알마 마이어라는 존재, 다큐멘터리의 역할,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빛과 멜로디가 어떻게 하나의 서사로 완성되는지를 중심으로 읽어 보겠다.


1부|알마 마이어는 왜 소설의 중심에 서 있는가

「빛의 호위」에서 가장 먼저 나에 호기심을 자극한 이름은 알마 마이어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언급되지만, 실제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살아 있는 등장인물보다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이 작품 전체를 움직이는 중심축이 되는 것같다.

화자는 뉴욕에서 권은을 만나 알마 마이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권 은은 이미 세상을 떠난 그녀에게 편지를 써 왔다고 말한다. 현실적으로는 닿을 수 없는 편지다. 그럼에도 편지를 쓴다는 행위는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한 사람을 끝까지 기억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조해진은 이 설정을 통해 죽음이 관계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다른 방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작품을 읽다 보면 알마 마이어는 한 개인을 넘어 상징적인 존재로 확장된다. 그녀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던 사람이며, 생존자가 희생자를 기억해야 한다는 믿음을 품고 살아간 인물이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 알마 마이어는 과거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존재가 된다. 우리는 누구를 기억하며 살아가는가. 그리고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

권은 역시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알마 마이어에게 보내는 편지는 사실 그녀 자신을 향한 다짐이기도 하다. 화자가 권은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변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사람의 기억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그 사람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기억을 이어 간다. 조해진은 바로 이 기억의 연쇄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방식을 보여 준다.

소설 창작을 배우는 나의 눈으로 보면 알마 마이어는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서사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중심축이다. 직접 등장하는 장면은 많지 않지만, 그녀의 존재가 인물들의 선택과 행동을 이끌어 간다. 소설에서 반드시 많이 등장해야 중요한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조해진은 이 작품으로 보여 준다.


2부|다큐멘터리는 왜 소설의 중요한 장면이 되었을까

작품의 중반부에서 화자는 다큐멘터리 「사람, 사람들(People, People)」을 보게 된다. 이 장면은 얼핏 보면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를 기준으로 작품의 의미는 전과 후로 나뉜다.

화자는 스크린 속에서 전쟁의 참혹한 현실과 그 속에서도 사람을 살리려 했던 노먼 마이어의 삶을 마주한다. 이어 알마 마이어가 왜 그 삶을 평생 기억하며 살아왔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조해진이 전쟁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카메라는 희생을 보여 주지만, 작가는 그 장면을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을 더 오래 따라간다. 역사는 사건 자체보다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의 표정 속에서 살아난다.

 특히 인상 깊었던 문장은

"그가 인생에서 한 가장 위대한 일을 내 삶에서 재현해 주는 것."

이 문장은 「빛의 호위」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알마 마이어가 노먼 마이어를 기억하는 이유는 과거를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가 보여 준 삶의 태도를 자신의 삶 속에서 다시 실천하기 위해서다. 기억은 회상이 아니라 현재의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의미를 갖는다.

이 대목에서 작품의 제목도 다시 읽히기 되었다.. '빛의 호위'란 누군가를 추모하는 의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에서 시작된 빛을 다른 사람이 이어 가는 과정이다. 노먼 마이어에서 알마 마이어로, 알마 마이어에서 권은으로, 그리고 권은의 이야기를 들은 화자로 이어지는 이 흐름은 하나의 긴 빛의 행렬과도 같다. 창작을 배우는 학생 입장에서 이 장면은 역사와 인물을 결합하는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대신, 그 사실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한 사람을 보여 줄 때 독자는 비로소 역사의 무게를 체감하게 된다. 조해진은 설명보다 장면을, 주장보다 사람을 앞세우며 소설만이 할 수 있는 기억의 방식을 완성해 낸다. 


3부|'빛의 호위'는 무엇을 지키는 빛인가

소설의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빛'이라는 말은 점점 더 많은 의미를 품게 된다. 처음에는 뉴욕 거리의 햇빛이었고, 겨울 아침의 눈부심이었으며, 맨해튼을 비추는 도시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작품을 끝까지 읽고 나면 그 빛은 더 이상 자연의 풍경이 아니다. 사람을 기억하려는 마음이자, 사라진 사람들의 삶을 이어 가려는 의지로 보인다.

마지막 부분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어떤 멜로디는 계속해서 그 세계에 남아 울려 퍼지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간혹 다른 세계로 넘어와 사라진 기억에 숨을 불어넣기도 한다는 것 역시, 나는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문장은 『빛의 호위』 전체를 압축하는 한 문장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조해진은 멜로디를 단순한 음악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멜로디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오래 남는 기억이고, 시간이 흘러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 주는 감정의 통로로 보았다. 빛 역시 마찬가지다. 손으로 붙잡을 수는 없지만, 누군가의 삶을 비추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진다.

그래서 제목인 '빛의 호위'도 새롭게 읽힌다. 처음에는 빛이 사람을 호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작품을 덮고 나면 오히려 사람이 빛을 지키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노먼 마이어의 삶을 알마 마이어가 기억하고, 알마 마이어의 이야기를 권은이 이어받고, 다시 화자가 그 이야기를 자신의 삶으로 품어 가는 과정은 하나의 긴 호위 행렬과도 같다. 그들이 지키는 것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려 했던 마음과 인간에 대한 신뢰였다.

내 입장에서 이 장면은 상징을 사용하는 방법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좋은 상징은 한 번 설명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끝나는 순간 가장 선명해진다. 조해진은 '빛'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를 마지막까지 끌고 가며 독자가 스스로 의미를 완성하도록 기다린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독자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멜로디처럼 빛의 이미지가 오래 남는다.


4부|조해진은 왜 사람을 믿는 소설을 쓰는가

조해진의 작품을 읽고 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따뜻하다'가 아니다. 오히려 '조용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현실을 외면하는 침묵이 아니다. 전쟁과 폭력, 상실과 이별 같은 무거운 현실을 끝까지 바라본 뒤에도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된 조용함이다.

『빛의 호위』에는 극적인 반전도,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도 많지 않다. 대신 한 사람의 말 한마디, 오래된 기억 하나, 누군가를 향한 작은 배려가 서사를 움직인다. 조해진은 세상을 바꾸는 영웅보다 한 사람을 기억하는 평범한 사람을 더 오래 바라본다. 그리고 바로 그 평범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 작품의 감동은 눈물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독자가 스스로 질문을 품게 만드는 데서 나옵니다. 나는 누구를 기억하며 살아왔는가. 누군가의 삶을 이어받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될 수 있을까. 조해진은 답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작품을 읽은 독자가 자신의 삶 속에서 그 질문에 답하도록 기다린다.

소설을 쓰는 내 입장에서도 이 작품은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우리는 종종 더 큰 사건과 더 강한 갈등을 만들려고 애쓴다. 그러나 조해진은 사람을 끝까지 이해하려는 시선 하나만으로도 깊은 서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결국 소설의 힘은 놀라운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을 끝까지 믿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빛의 호위』는 조용히 증명한다.


맺는말|빛은 결국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이어진다

『빛의 호위』를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이 작품이 '기억'에 관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읽으면서는 '빛'에 관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장을 덮고 오랫동안 곱씹어 보니, 이 작품은 결국 사람에 관한 소설이었다.

조해진은 거대한 역사를 말하면서도 한 사람의 얼굴을 잊지 않았다. 슬픔을 이야기하면서도 절망에 머물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억을 과거의 회상으로 남겨 두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태도로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빛의 호위』의 빛은 어둠을 몰아내는 강한 빛이 아니라, 길을 잃지 않도록 곁을 밝혀 주는 작은 등불에 가깝다.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며 소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좋은 소설은 독자를 놀라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화려한 문장보다 깊은 시선이 오래 남고, 큰 사건보다 한 사람을 향한 이해가 더 깊게 전해진다는 사실을 조해진은 자신의 작품으로 보여 주었다.

언젠가 저 역시 누군가의 삶을 조용히 비추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빛의 호위』를 덮으며 가장 오래 남은 것은 한 문장이 아니라, 사람을 끝내 믿으려는 작가의 시선이었다. 아마 그것이 조해진 문학이 우리 곁에서 오래 빛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