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서평23 김연수 『소설가의 일』 |소설은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다 들어가는 글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는 소설을 잘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작법서를 기대했다. 좋은 문장을 만드는 법, 인물을 설계하는 법, 이야기를 끌고 가는 기술 같은 것들을 배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난 뒤 오래 남은 것은 기술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 사람의 삶과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에 관한 질문이었다.우리는 흔히 소설을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김연수는 상상보다 먼저 이해를 이야기한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끝내 이해하려는 노력, 지나간 삶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 실패와 상처를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는 태도. 그래서 『소설가의 일』은 단순한 작법서가 아니라 인간을 오래 바라본 기록처럼 읽힌다.이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질문도 하나였다.'소설은 왜 사람을.. 2026. 7. 17. 김훈 작가의 문장은 왜 오래 남을까 / 좋은 문장은 무엇을 덜어낼지 안다 1. 좋은 문장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이다 좋은 문장을 쓰려면 무엇을 더해야 할까. 화려한 표현일까, 어려운 단어일까, 아니면 독자를 놀라게 하는 비유일까.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고민을 한다. 하지만 김훈의 문장을 읽다 보면 정반대의 답을 만나게 된다. 좋은 문장은 무엇을 더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덜어낼지를 아는 문장이라는 사실이다.김훈의 소설과 산문에는 불필요한 말이 거의 없다. 감정을 크게 설명하지도 않고, 화려한 수식어를 늘어놓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문장은 오래 남는다. 짧고 단단한 문장 하나가 독자의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울린다. 이것이 바로 많은 독자가 김훈의 문장을 '아름답다'기보다 '묵직하다'라고 말하는 이유일 것이다.대표작 『칼의 노래』를 읽으면 이런 특.. 2026. 7. 16. 소설의 첫 문장은 인물로 시작한다.|잊히지 않는 주인공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1. 우리는 줄거리보다 사람을 기억한다어린 시절 읽었던 소설의 줄거리를 모두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 사건의 순서도 흐릿해지고, 결말마저 가물가물해진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주인공이다.누군가는 『어린 왕자』를 떠올리면 금발 소년의 순수한 눈빛이 먼저 생각나고, 『데미안』을 읽은 사람은 여전히 싱클레어와 데미안을 기억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덮은 뒤에도 독자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 것은 줄거리보다 영혜라는 인물이다. 작품은 끝났지만 인물은 독자의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간다.왜 어떤 주인공은 평생 잊히지 않을까. 좋은 소설은 사건이 특별해서 오래 남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 있기 때문에 오래 남는다. 독자는 사건을 따라 책장을 넘기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 2026. 7. 15. 존 가드너 『소설의 기술』 완결|좋은 소설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좋은 소설은 어떻게 완성될까? 존 가드너 『소설의 기술』 6장과 7장을 바탕으로 테크닉과 플롯의 의미를 살펴보고, 좋은 이야기를 끝까지 완성하는 창작자의 태도를 생각해 본다.소설을 쓰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이 이야기는 끝까지 갈 수 있을까.'처음에는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시작한다. 어떤 장면은 또렷하고, 어떤 인물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막상 원고를 쓰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인물은 제자리에서 맴돌고, 사건은 억지로 이어 붙인 것처럼 어색해진다. 처음에는 부족한 상상력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실을 깨닫게 된다. 소설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이디어의 부족이 아니라 끝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라는 것을 말이다.존 가드.. 2026. 7. 12. 소설 쓰기에서 가장 흔한 실수 4가지|존 가드너 『소설의 기술』 이 글은 존 가드너 『소설의 기술』 연재의 네 번째 글입니다. 앞선 글에서는 좋은 소설의 미학과 '꿈으로서의 소설', 재미와 진실, 그리고 메타픽션에 대한 존 가드너의 생각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실제 창작 과정에서 초보 작가들이 가장 자주 저지르는 실수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하면 누구나 비슷한 고민을 한다. 몇 장을 쓰다가 이야기가 막히기도 하고, 등장인물이 살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날은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원고를 통째로 지워 버리기도 한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나는 소설을 쓸 재능이 없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하지만 존 가드너는 『소설의 기술』에서 이러한 문제를 재능의 부족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초보.. 2026. 7. 11. 존 가드너 『소설의 기술』 3부|메타픽션과 해체주의를 비판한 이유 1. 메타픽션은 왜 독자를 소설 밖으로 끌어내는가20세기 후반 문학은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빠르게 변화했다. 현실을 충실히 재현하던 전통적인 소설에서 벗어나, 소설 자체를 의심하고 언어와 형식을 실험하는 작품들이 등장했다. 메타픽션과 해체주의는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에는 매우 혁신적인 시도로 평가받았고, 오늘날에도 문학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개념이다.하지만 존 가드너는 『소설의 기술』에서 이러한 흐름을 비교적 단호하게 비판한다. 얼핏 보면 그는 새로운 문학을 거부하는 보수적인 작가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을 끝까지 읽어 보면 그의 문제의식은 형식 자체가 아니라 독자가 소설을 경험하는 방식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가드너는 소설을 '하나의 꿈'이라고 설명한다. 독자는 책을 .. 2026. 7. 11.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