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기술6 조해진 빛의 호위|사람은 어떻게 서로의 삶을 비추는가 들어가는 말 /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기억하며 살아간다조해진 작가의 소설을 읽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의 삶은 정말 혼자만의 것일까. 우리는 흔히 인생을 자신의 선택과 경험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조해진 작가의 소설 속 인물들은 조금 다른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의 작은 친절을 오래 기억하고, 오래전 스쳐 지나간 한 사람의 말 한마디를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또 다른 사람의 삶에 작은 흔적을 남긴다.그래서 조해진 작가의 소설에는 영웅이 없다. 세상을 뒤집는 거대한 사건도 없다. 대신 이름 없는 사람들이 서로를 기억하고, 잊지 않으며, 때로는 아주 조용하게 한 사람의 삶을 지탱해 주는 순간들이 있다. 그 조용한 연결이 모여 한 편.. 2026. 7. 25. 작가는 왜 첫 문장을 가장 늦게 쓸까 소설은 첫 문장에서 시작되지 않는다1. 첫 문장은 가장 마지막에 완성된다많은 사람들은 소설이 첫 문장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작가도 첫 줄을 쓰고, 그다음 문장을 이어 가며 한 권의 소설을 완성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작가들은 첫 문장을 가장 늦게 완성한다.처음에는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다. 첫 문장이 있어야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막상 소설을 써 본 사람이라면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인물의 성격이 달라지고, 주제가 조금씩 선명해지며, 결말마저 처음 계획과 달라지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첫 문장이 끝까지 가서는 더 이상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존 가드너도 『소설의 기술』에서 좋은 소설은 독자를 하나의 .. 2026. 7. 14. 소설 쓰기에서 가장 흔한 실수 4가지|존 가드너 『소설의 기술』 이 글은 존 가드너 『소설의 기술』 연재의 네 번째 글입니다. 앞선 글에서는 좋은 소설의 미학과 '꿈으로서의 소설', 재미와 진실, 그리고 메타픽션에 대한 존 가드너의 생각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실제 창작 과정에서 초보 작가들이 가장 자주 저지르는 실수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하면 누구나 비슷한 고민을 한다. 몇 장을 쓰다가 이야기가 막히기도 하고, 등장인물이 살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날은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원고를 통째로 지워 버리기도 한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나는 소설을 쓸 재능이 없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하지만 존 가드너는 『소설의 기술』에서 이러한 문제를 재능의 부족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초보.. 2026. 7. 11. 존 가드너 『소설의 기술』 3부|메타픽션과 해체주의를 비판한 이유 1. 메타픽션은 왜 독자를 소설 밖으로 끌어내는가20세기 후반 문학은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빠르게 변화했다. 현실을 충실히 재현하던 전통적인 소설에서 벗어나, 소설 자체를 의심하고 언어와 형식을 실험하는 작품들이 등장했다. 메타픽션과 해체주의는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에는 매우 혁신적인 시도로 평가받았고, 오늘날에도 문학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개념이다.하지만 존 가드너는 『소설의 기술』에서 이러한 흐름을 비교적 단호하게 비판한다. 얼핏 보면 그는 새로운 문학을 거부하는 보수적인 작가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을 끝까지 읽어 보면 그의 문제의식은 형식 자체가 아니라 독자가 소설을 경험하는 방식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가드너는 소설을 '하나의 꿈'이라고 설명한다. 독자는 책을 .. 2026. 7. 11. 존 가드너 『소설의 기술』 2부| 좋은 소설은 왜 재미있어야 하는가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이 있다. 어떻게 하면 문장을 더 아름답게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독창적인 구성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존 가드너는 소설의 기술에서 그보다 먼저 훨씬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독자는 왜 소설을 끝까지 읽는가?" 많은 사람들은 '재미'라는 말을 가볍게 생각한다. 재미는 오락이고, 진지한 문학은 재미보다 의미를 추구해야 한다고 여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존 가드너는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에게 재미는 단순한 웃음이나 자극이 아니라 독자를 소설 속 세계로 끝까지 머물게 하는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결국 작품이 담고 있는 진실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소설의 기술』 3장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재미와 진실은 .. 2026. 7. 10. 존 가드너 『소설의 기술』 1부|좋은 소설은 어떻게 독자를 꿈꾸게 하는가 좋은 소설은 무엇으로 독자를 끝까지 붙잡을까. 흥미로운 사건일까, 아름다운 문장일까, 아니면 개성 있는 캐릭터일까. 미국의 소설가이자 문학 이론가인 존 가드너는 『소설의 기술(The Art of Fiction)』에서 이 질문에 전혀 다른 답을 내놓는다. 그는 소설을 읽는 경험을 하나의 '생생하고 끊김 없는 가상의 꿈(Vivid and Continuous Fictional Dream)'이라고 정의한다. 독자는 활자를 읽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 세계를 실제처럼 경험해야 하며, 그 꿈이 깨지는 순간 소설의 마법도 끝난다는 것이다.이 개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소설의 기술』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원리이며, 이후 등장하는 문체, 디테일, 플롯, 캐릭터, 시점, 퇴고에 관한 모든 설명의 출발점이다. 이번 글.. 2026. 7. 9.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