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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사유6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집 안에서 가족처럼 함께 살던 도트가, 손님이 문을 제대로 닫지 않은 사이 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하루쯤 지나면 돌아올 거라 믿었다. 시간이 더 걸려도 꼭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나간 지 이틀째 되던 날 한 번 본 뒤로는, 다시 보지 못했다.사람들은 왜 그동안 가만히 있었냐고 묻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집 주변을 맴도는 도트와 꼭 닮은 고양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짝꿍과 나는 그 아이를 도트라고 믿었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달랐다. 도트에게 있던 코 밑의 검은 점이 없었고, 오른쪽 앞발만 하얗고 나머지는 검은 도트와 달리, 그 아이는 다리가 모두 하얗고 앞다리 한쪽에만 계란만 한 검은 점이 있었다. 볼 때마다 자꾸 착각하게 된다.한 달이 지났으.. 2026. 5. 29.
우리도 작가, 삶이 그림책이 되기까지 우리도 작가, 살아온 시간이 그림책이 되다어르신들과 함께한 네 달간의 그림책 수업. 그 시간이 끝나고, 마침내 한 권 한 권의 그림책이 세상에 나왔습니다.처음에는 “우리가 무슨 그림책을 만들어요” 하시며 조심스러워하시던 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꺼내고, 그림을 그리고, 지나온 시간을 한 장면씩 돌아보는 동안 어느새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은 작가가 되어 계셨습니다.지나온 삶이 한 권의 책이 되다이번 그림책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 부모를 향한 그리움, 가족에 대한 사랑, 오래된 상처와 따뜻한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누군가에게는 잊고 지냈던 어린 날의 풍경이었고, 누군가에게는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아온 사랑 이야기였습니다.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웃음이 나기도 하고, 가슴 한편이 먹먹해지기도.. 2025. 9. 30.
엄마의 시간. 치매 엄마와 뜨개질이 다시 시작된 날 다시 시작된 뜨개질엄마가 뜨개질을 시작하셨다.길이가 한 자쯤 되는 대바늘을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뜨신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 손의 뜨개질감은 조금씩 늘어가고, 양귀비꽃처럼 붉은 털실 뭉치는 천천히 작아진다.무얼 뜨시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웃으며 말씀하신다.“나도 몰라. 뜨다 보면 조끼든 스웨터든 뭐가 되겠지.”그 말이 그럴듯해서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그런데 이번에는 주머니가 문제였다.주머니를 달려면 어느 순간 코를 내어야 하는데, 그게 제법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한참을 끙끙거리며 계산하시다가 결국 말씀하셨다.“아이고, 안 되겠다. 주머니 없이 해야지.”수십 년이 지나도 손은 뜨개질을 기억하고 있는데, 머리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괜찮아, 엄마. 요즘은 주머니 없어도 돼.”나는 괜히 맞장구.. 2023. 7. 17.
아버지, 힘내세요|아흔다섯 아버지의 우울 앞에서 아버지가 우울해하셨다.거실 소파에 앉아 벽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니 계시다가, 어느새 담요를 덮고 잠이 드시곤 했다.원래 아버지 거실에는 늘 TV 소리가 있었다.조금 시끄럽고 투박해 보이는 프로레슬링이 하루 종일 나오곤 했다. 마음속으로는 ‘좀 끄시면 좋겠다’ 생각한 적도 많았다.그런데 어느 날부터 TV도 켜지지 않았다.불도 제대로 켜지 않은 거실에 조용히 앉아 계신 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을 아프게 했다.“아버지, 왜 TV 안 보세요?”한참 뜸을 들이시던 아버지가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아무래도 내가 올해는 못 넘길 것 같아. 자신이 없구나.”순간 마음이 철렁했다.요즘은 백세시대라고, 아직 한참 더 사실 거라고 가볍게 웃으며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그해 아버지는 아흔다섯이셨다.평생 가족을 지.. 2022. 2. 26.
강원국 《나는 말하듯이 쓴다》를 읽으며|질문이 글이 된다는 것 글을 조금 더 잘 쓰고 싶다는 마음에 강원국의 《나는 말하듯이 쓴다》를 읽기 시작했다.제목부터 왠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말하듯이 쓴다.’왠지 부담이 덜했다.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정말 그랬다. 어렵지 않은데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래서 자꾸 메모하게 된다. 휙 읽고 덮는 책이 아니라, 한 문장씩 곱씹으며 읽게 되는 책이었다.첫 장의 제목은 ‘조금은 뻔뻔하게, 조금은 용감하게’였다.그 안에서 특히 마음에 들어온 건 ‘질문의 힘’ 에 대한 이야기였다.우리는 질문보다 답을 찾는 교육을 받았다책에서는 말한다.그동안 우리의 교육은 질문하는 교육이 아니라, 질문에 맞는 답을 찾는 교육이었다고.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는 말 같았다.그래서였을까.글쓰기가 늘 어렵게 느껴졌다.정답은 찾으려 했지만, 내 이야기를 꺼내는.. 2022. 2. 7.
신영복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을 읽으며|사랑도 경작되는 것이라는 말 신영복의 《옥중서신》을 읽다가 문득 책장을 덮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도입 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사랑은 경작하는 것이다.”그리고 이어진다.“생활의 결과로써 경작되는 것이지 결코 갑자기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그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나는 사랑이라는 것이 어느 날 문득 생겨나는 감정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좋아하게 되면 사랑이고, 마음이 생기면 사랑인 줄 알았다.그런데 ‘경작’이라니.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사랑도 결국 가꾸는 일이었다‘경작(耕作).’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는 낯설지 않은 말이다.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때를 기다리며 돌보는 일.한 번 씨를 뿌린다고 바로 열매가 맺히는 것은 아니다.비가 너무 와도 걱정이고, 햇볕이 부족해도 걱정이.. 2022. 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