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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의 독서

예소연 사랑과 결함을 읽고|사랑은 왜 결함을, 상처는 사랑을 닮고,아이들놀이에도, 나는 진실로

by 들꽃 2026. 6. 22.

예소연의 사랑과 결함 책 앞 표지 이미지

 

소설을 읽다 보면 첫 문장만으로도 끝까지 읽게 만드는 작품이 있다. 예소연의 **《사랑과 결함》**이 그랬다.
"잠을 많이 자면 머리가 이상해진다. 그런데 나는 그 이상해지는 느낌이 좋다."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멈춰 섰다.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표현하는 힘 때문이다.
잠을 많이 자는 일은 누구나 경험한다. 하지만 '머리가 이상해진다'거나, 더 나아가 그 이상한 감각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이 한 문장은 독자를 단숨에 소설 속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주인공 성혜가 평범한 정신 상태와는 조금 다른 지점에 서 있음을 암시한다.
 

사랑과 결함 소설 속에 공감 되는 문장을 줄 그은 이미지

1. 사랑은 왜 결함을 닮아갈까

이 소설을 이끄는 중심인물은 세 명이다. 화자인 성혜, 고모, 그리고 연인 수.
엄마와 아빠도 등장하지만 중심축은 아니다. 성혜와 고모는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상처를 주는 관계이고, 수는 그 둘 사이에서 성혜를 이해하려 애쓰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핵심은 성혜와 고모의 관계다.
고모는 남동생을 돌보느라 자신의 삶을 미뤘고, 뒤늦게 결혼했지만 결국 파탄을 맞는다. 그러나 소설은 고모를 결함 있는 사람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 때문에 자신의 삶을 희생한 평범한 사람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사랑의 방식이다.
고모는 성혜를 지나칠 만큼 사랑하고, 반대로 성혜의 엄마를 끝없이 미워한다.
성혜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동시에 얽혀 있는 환경에서 성장한다. 사랑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고, 사랑과 미움이 분리되지 않는 경험을 반복한다.
그 결과 성혜에게 사랑은 따뜻한 감정보다 불안을 동반하는 감정이 된다.
 
"그 시절의 나에게 사랑이란 모종의 불안을 동반하며 아슬아슬한 선을 넘나드는 무엇이었다."
또 다른 문장도 인상 깊다.

"순정과 흠뻑 사랑에 빠져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순정이 참을 수 없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사랑과 미움이 같은 자리에서 자라는 것이다.

2. 상처는 사랑을 닮아 반복된다

성혜가 성인이 되어 만난 연인 수와의 관계에서도 이런 결함은 그대로 반복된다.
수의 작은 말에도 상처받고, 사소한 표현 하나에도 마음을 닫는다. 결국 피시방에서 누군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

"정신병은 모계유전이라던데."

그 말 하나로 관계는 무너진다.
고모의 장례식 이후 다시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수는 손을 내밀지만 성혜는 피하려 한다. 비가 쏟아지는 새벽, 추위에 떠는 수를 끝내 자신의 방으로 들이지 못한다.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사랑하는 방법 자체가 비틀어져 있기 때문이다.

3. 아이들의 놀이에도 드러나는 결함

이런 모습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했던 '남편 놀이', '화장실 달리기' 사건은 평범한 아이들의 놀이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관계가 망가지는 방식이 어른들의 세계만큼이나 불안하다.
작가는 성혜의 결함이 특정한 연애 문제만이 아니라 삶 전체에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4. 그럼에도 수는 포기하지 않는다

수는 성혜 때문에 끊임없이 힘들어한다.
약속이 취소될까 늘 확인하는 성혜를 이해해야 하고, 이유도 모른 채 눈치를 보며 살아간다.
그런데도 수는 성혜를 바꾸려 하기보다 다른 사랑의 방식을 보여준다.
성혜가

"네가 평생 그 외로움을 책임질 순 없잖아."

라고 말하자 수는 이렇게 답한다.

"평생 외로움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만 그 사람을 보살필 수 있니?"

이 짧은 대화는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처럼 느껴졌다.
사랑은 책임질 수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부족한 채로도 함께할 수 있는 것일까.
성혜 역시 마지막에는

"요즘 들어서는 수야말로 최선의 태도를 고민하며 사는 사람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된다.
작지만 분명한 변화다.

5. 로봇청소기는 무엇을 의미할까

끝까지 풀리지 않았던 것은 로봇청소기의 상징이다.
성혜가 고모에게 선물하고, 고모는 다시 수에게, 수는 다시 성혜에게 돌려준다.
세 사람을 이어주는 물건인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고장이 난 채 앞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 부수려는 듯 돌진한다.
이 장면이 세대를 거쳐 이어지는 결함을 깨뜨리라는 의미인지, 아니면 사랑도 결국 통제할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인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나에게는 오래 남는 장면이었다.

6. 나는 진실로 사랑한 적이 있을까

《사랑과 결함》은 사랑을 정의하려는 소설이 아니다.
다만 상처받은 사람이 어떻게 사랑하게 되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 결함이 다음 관계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담담하게 그려낸다.
작가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성혜가 자신의 결함을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가능성만 남긴다.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나는 진실로 사랑한 적이 있을까.
그리고 내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 속에도, 혹시 알지 못했던 어떤 결함이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좋은 소설은 답보다 질문을 남긴다.
예소연의 **《사랑과 결함》**은 오랫동안 곱씹게 되는 질문 하나를 내게 남겨준 작품이었다.

이주란 소설가가 추천하는 글을 실은 책 뒷 표지
예소연의 소설 '사랑과 결함' 을 이주란 소설가가 추천하는 글을 실은 책 뒷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