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골생활3

시골 마을 카페에 첫 손님이 오던 날 구십 어르신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카페 문을 열고 청소를 마칠 즈음이었다.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려 나가 보니, 마을 어르신 세 분이 천천히 걸어오고 계셨다. 모두 구십이 다 되어 가는 어머니들이었다. 얼른 문을 열어 드리며 인사했다.“어머니, 어서 오세요.”반가운 마음에 목소리가 먼저 밝아졌다.자리에 앉으시더니 한 분이 말씀하셨다.“어제 먹었던 거 맛나던데, 그거 줘봐.”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아, 대추차요?”“그래, 그거. 그 곶감도 줘보고.” 전날 오셨을 때 말랑말랑한 곶감과 가래떡을 드렸는데 기억하시고 다시 찾아오신 것이다.그것도 세 분이 돌아가며 산다며 일부러 들르셨다. 다시 찾아와 주신 마음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대추차와 곶감을 내어드리고, 갓 구워 나온 크루아상을 접시에 담아 조심스레 내.. 2026. 6. 9.
봄나물 뜯으며 나를 만난다 봄이 오면 괜히 설렌다봄이 되면 괜히 마음이 설렌다.마치 봄처녀라도 된 듯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먹거리를 찾아 나선다. 밭둑이며 산기슭이며 눈길이 바빠진다.오십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연의 풀들이 먹거리가 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어릴 적 쑥과 냉이를 캐 본 기억은 있다. 하지만 들과 산에 자라는 많은 풀들이 먹을 수 있다는 건 책에서나 본 이야기였다.실제로 뜯어 먹어 본 적은 거의 없었다.시골에 살아도 쑥과 냉이, 조금 더 나가면 뽕잎 정도가 내가 아는 나물의 전부였다.그러다 십여 년 전, 본격적으로 귀농을 하면서 봄이 달라졌다.봄이면 나물을 뜯겠다며 산으로 오르고, 들녘에 쪼그리고 앉아 하나하나 뜯는 재미에 빠졌다.지금 생각하면 봄이 기다려지는 첫 번째 이유는 아마 이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2022. 5. 7.
아버지, 힘내세요|아흔다섯 아버지의 우울 앞에서 아버지가 우울해하셨다.거실 소파에 앉아 벽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니 계시다가, 어느새 담요를 덮고 잠이 드시곤 했다.원래 아버지 거실에는 늘 TV 소리가 있었다.조금 시끄럽고 투박해 보이는 프로레슬링이 하루 종일 나오곤 했다. 마음속으로는 ‘좀 끄시면 좋겠다’ 생각한 적도 많았다.그런데 어느 날부터 TV도 켜지지 않았다.불도 제대로 켜지 않은 거실에 조용히 앉아 계신 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을 아프게 했다.“아버지, 왜 TV 안 보세요?”한참 뜸을 들이시던 아버지가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아무래도 내가 올해는 못 넘길 것 같아. 자신이 없구나.”순간 마음이 철렁했다.요즘은 백세시대라고, 아직 한참 더 사실 거라고 가볍게 웃으며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그해 아버지는 아흔다섯이셨다.평생 가족을 지.. 2022.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