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화를 쓰다 보면 가끔 한 문장 앞에서 멈출 때가 있다.
문법적으로 틀린 것도 아니고 뜻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아이의 말처럼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문장을 다시 읽어보면 어른인 내가 아이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마음을 너무 정확하게 설명하거나, 실제 아이가 잘 쓰지 않을 것 같은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어른에게는 자연스러운 문장이 아이의 입에서는 갑자기 어색해지는 것이다.
처음 동화를 쓸 때는 쉬운 단어를 쓰고 문장을 짧게 만들면 아이의 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편의 동화를 쓰고 고치면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의 말투를 쓴다는 것은 말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아이를 먼저 생각하는 일이었다.
동화 속 아이의 말투는 어떻게 써야 할까
동화 속 아이의 말투를 쓸 때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나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와 고학년 아이가 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알고 있는 단어도 다르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나이만 맞춘다고 그 아이의 말이 되는 것도 아니다.
같은 나이라도 말이 많은 아이가 있고 말수가 적은 아이가 있다. 마음에 있는 것을 바로 말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속마음을 감추거나 엉뚱한 행동으로 보여주는 아이도 있다.
가족에게 하는 말과 친구에게 하는 말도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대사를 고칠 때는 ‘요즘 아이들이 이렇게 말할까?’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아이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정말 이렇게 말할까?’를 먼저 생각한다.

어른은 아이의 마음을 너무 잘 설명하려고 한다
내가 쓴 아이의 대사에서 가장 먼저 경계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감정을 지나치게 정확하게 설명하는 말이다.
어른은 자신이 왜 서운한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상대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비교적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는 꼭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서운하면서도 “서운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고, 엄마가 보고 싶으면서도 “엄마가 보고 싶어”라고 바로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괜히 짜증을 내거나 문을 닫아버릴 수도 있고, 아무렇지 않은 척 다른 이야기를 꺼낼 수도 있다.
그런데 작가는 아이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마음을 독자에게 알려주고 싶은 나머지 아이에게 너무 정확한 말을 시킬 때가 있다.
그럴 때 대사는 아이의 말이라기보다 아이의 마음을 설명하는 작가의 문장처럼 들릴 수 있다.
아이의 마음을 모두 말하게 하지 않는 것도 아이의 말투를 만드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쉬운 단어를 쓴다고 모두 아이의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동화를 쓰면서 어려운 단어를 피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짧고 쉬운 단어만 사용한다고 자연스러운 아이의 말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도 상황에 따라 어려운 말을 사용한다. 어른에게서 들은 말을 그대로 따라 하기도 하고, 학교나 인터넷에서 새로 알게 된 표현을 재미있어하며 반복해서 쓰기도 한다.
오히려 그런 말 하나가 그 아이의 성격이나 생활환경을 보여줄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단어의 난이도만이 아니었다.
왜 이 아이가 이 말을 알고 있는지,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말하는 아이인지, 지금 대화하고 있는 상대에게 이 말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했다.
아이의 말투는 쉬운 단어의 목록이 아니라 그 아이가 살아온 시간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마다 말하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
등장인물이 여러 명인 동화를 쓰다 보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이름은 다른데 모두 비슷하게 말하는 것이다.
작가가 한 사람이니 조금만 방심하면 모든 아이가 내가 사용하는 어휘와 문장으로 말하게 된다.
그래서 대사를 다시 읽으면서 누가 말하고 있는지 이름을 가려도 어느 정도 구별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말을 길게 하는 아이인지 짧게 끊어 말하는 아이인지, 먼저 질문하는 아이인지 대답만 하는 아이인지도 살펴본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아이는 장난으로 넘기고, 어떤 아이는 따지고 들며, 또 다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차이가 쌓이면 성격이 된다.
반대로 모든 아이에게 비슷한 대사를 주면 인물의 이름과 외모는 달라도 목소리는 하나처럼 들릴 수 있다.
대사는 정보를 전달하는 문장이면서 동시에 그 인물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실제 아이들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고 동화가 되지는 않았다
아이들과 가까이 지내다 보면 재미있는 말을 많이 듣는다.
어른이라면 하지 않을 엉뚱한 말도 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표현을 불쑥 내놓기도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이건 동화에 써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실제 아이가 했던 말을 그대로 작품에 옮긴다고 언제나 좋은 대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대화에는 반복도 많고 앞뒤가 생략되는 경우도 많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사람은 이해하지만 글로 옮겨 놓으면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 말도 있다.
동화 속 대사는 현실의 아이처럼 자연스러워야 하지만 동시에 독자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실제 아이들의 말에서 느낌과 리듬을 얻더라도 작품 속 인물과 장면에 맞게 다시 다듬는 과정이 필요했다.
대사는 소리 내어 읽으면 어색한 곳이 더 잘 보인다
아이의 대사를 고칠 때도 소리 내어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눈으로 읽을 때는 괜찮았던 말이 입으로 읽으면 갑자기 어른스럽게 들릴 때가 있다.
문장이 너무 완전하거나 설명이 길어지는 곳도 귀로 들으면 쉽게 드러난다.
특히 대화가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한 사람의 말이 끝난 뒤 다음 사람의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도 알 수 있다.
혼자 쓴 대사인데도 직접 읽어보면 실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서로 자기 말만 하고 있는지가 조금씩 들린다.
그래서 원고를 읽다가 아이의 말이 입에 잘 붙지 않으면 다시 고친다.
대사는 눈으로 보는 문장이면서 귀로 듣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유행어를 넣는다고 아이답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의 말을 자연스럽게 만들려고 요즘 아이들이 쓰는 유행어나 줄임말을 넣고 싶을 때도 있다.
물론 인물과 상황에 맞는다면 그런 표현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유행하는 말을 많이 넣는다고 아이의 목소리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행어는 빠르게 생기고 빠르게 사라진다. 지금은 자연스러워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특정 시기를 지나치게 드러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모든 아이가 같은 유행어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유행하는 표현을 넣기 전에 그 말을 이 아이가 정말 사용할지를 먼저 생각한다.
아이답게 보이기 위해 억지로 넣은 말이라면 오히려 빼는 편이 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어른스러운 말을 발견하면 한 번 더 생각한다
퇴고하면서 아이의 대사를 읽다가 지나치게 어른스럽다는 느낌이 들면 바로 다른 말로 바꾸기보다 먼저 이유를 생각한다.
단어가 어려운 것인지, 문장이 너무 논리적인 것인지, 자신의 감정을 지나치게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인지 살펴본다.
그리고 그 말을 하지 않고도 아이의 마음을 보여줄 방법이 있는지 생각한다.
말을 줄일 수도 있고 행동으로 바꿀 수도 있다.
때로는 대답하지 않는 것이 더 그 아이답기도 하다.
침묵하거나 딴청을 부리는 것도 대화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그렇게 하나씩 덜어내다 보면 내가 아이에게 시켰던 말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요즘 내가 아이의 대사를 고치면서 묻는 것
동화의 대사를 다시 읽을 때면 몇 가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말은 이 나이의 아이가 할 수 있는 말인가.
이 아이의 성격에 어울리는가.
친구에게 하는 말과 어른에게 하는 말이 똑같지는 않은가.
자신의 마음을 너무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른 아이의 대사와 목소리가 지나치게 비슷하지는 않은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묻는다.
이 말을 정말 아이가 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아이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걸리는 문장이 있으면 다시 고친다.
어른인 내가 완전히 아이가 되어 글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아이에게 내 말을 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아이의 나이와 성격을 생각하고, 그 아이가 살아온 환경과 지금 마주한 상황을 들여다보면서 한마디씩 다시 들어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만들어준 문장이 아니라 그 아이가 정말 자기 목소리로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대사가 생긴다.
동화 속 아이의 말투를 고치는 일은 결국 어른의 말을 쉬운 말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목소리를 조금씩 걷어내고 그 아이의 목소리를 찾아주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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