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물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제법 쌀쌀한 이른 봄이다. 그래도 마당과 밭둑을 한 바퀴 둘러보면 봄은 이미 먼저 와 있다.
냉이는 어느새 뿌리가 억세지고 꽃까지 피우기 시작했다. 조금 늦은 셈이다. 대신 지금은 씀바귀가 딱 맛있을 때다. 쌉싸름한 맛이 올라오고, 갓난아이 손바닥처럼 작은 머위가 얼굴을 내민다. 향긋한 달래와 막 고개를 들기 시작한 땅두릅까지.
작은 텃밭과 밭둑, 뒷산 어귀를 잠시만 둘러봐도 먹을거리가 지천이다.
시골생활 중 가장 바쁘고도 행복한 계절. 봄나물들의 축제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내가 할 일이라고는 이 녀석들과 봄 인사를 나누며 적당히 뜯고, 적당히 남겨 두는 일이다. 어느 자리에 무엇이 올라오는지 머릿속에 나물 지도를 그려 두고, 언제쯤 다시 뜯으면 좋을지 슬며시 계산도 해본다.
그런데 이런 지도도 메모도 전혀 필요 없는 녀석이 하나 있다.
바로 쑥이다.
흔해서 더 고마운 것
쑥은 아무 데서나 잘 자란다. 아무리 뜯어도 또 올라오고, 특별히 돌보지 않아도 제 몫을 다한다.
그러면서도 맛과 향, 쓰임과 효능까지 참 대단하다.
단군신화에까지 등장할 만큼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던 쑥은 지금도 여전히 쓸모가 많다.
요즘처럼 어린 쑥은 된장찌개에 넣거나 콩가루를 버무려 쑥국을 끓이면 딱 좋다. 보들보들하고 향이 강하지 않아 된장만 풀어도 충분히 맛있다.
쌀가루를 살짝 입혀 찜솥에 찌면 향긋한 쑥버무리도 된다. 어린 시절 생각나는 추억의 간식이다.
봄이 깊어지면 쑥은 점점 억세지고 향도 진해진다. 그때는 새순만 잘라 개떡을 만들거나 방앗간에서 쑥절편으로 만들어 먹는다.
아주 어린 쑥은 그늘에 바짝 말려 두면 쑥차가 되어 일 년 내내 마실 수 있다.
게다가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쯤 쑥뜸까지 뜨고 있으니, 쑥만큼 고맙고 든든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런 쑥이 온 천지에 널려 있다.
이거야말로 노다지다.
요즘 말로 하면 정말 대박이다.
흔한 것이 더 소중할 때
쑥을 뜯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정말 소중한 것들은 대부분 흔하다는 것.
햇살도 그렇고, 바람도 그렇다. 물도 마찬가지다.
없으면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누구에게나 기본처럼 주어진다.
반대로 값비싼 것들은 의외로 없어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좋은 자동차나 비싼 물건, 새로 나온 가전제품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들이 삶을 지탱해 주는 건 아니다.
생각해 보면 내 삶을 오래 지켜준 건 늘 흔한 것들이었다.
봄이면 올라오는 나물들, 마당 한켠의 햇살, 밥 한 끼 나눌 사람.
그리고 계절이 바뀌면 늘 같은 자리에 다시 올라오는 쑥 같은 것들.
늪실의 봄은 이제부터다
내가 사는 늪실에도 흔하고 소중한 것들이 지천이다.
조금만 지나면 밭둑에서 두릅과 땅두릅, 옻순이 차례로 올라올 테고,
조금 더 지나면 덖어 차로 마실 고욤잎도 기다리고 있다.
뒷산에는 취나물과 고사리, 고비나물이 얼굴을 내밀 참이다.
내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가을이면 송이버섯까지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향긋한 쑥국 한 그릇을 남편과 마주 앉아 먹으며 생각한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흔하고 소중한 것들이 우리 곁을 지나갈까.
늪실의 봄 축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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