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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작가, 삶이 그림책이 되기까지 우리도 작가, 살아온 시간이 그림책이 되다어르신들과 함께한 네 달간의 그림책 수업. 그 시간이 끝나고, 마침내 한 권 한 권의 그림책이 세상에 나왔습니다.처음에는 “우리가 무슨 그림책을 만들어요” 하시며 조심스러워하시던 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꺼내고, 그림을 그리고, 지나온 시간을 한 장면씩 돌아보는 동안 어느새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은 작가가 되어 계셨습니다.지나온 삶이 한 권의 책이 되다이번 그림책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 부모를 향한 그리움, 가족에 대한 사랑, 오래된 상처와 따뜻한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누군가에게는 잊고 지냈던 어린 날의 풍경이었고, 누군가에게는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아온 사랑 이야기였습니다.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웃음이 나기도 하고, 가슴 한편이 먹먹해지기도.. 2025. 9. 30.
엄마의 시간. 치매 엄마와 뜨개질이 다시 시작된 날 다시 시작된 뜨개질엄마가 뜨개질을 시작하셨다.길이가 한 자쯤 되는 대바늘을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뜨신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 손의 뜨개질감은 조금씩 늘어가고, 양귀비꽃처럼 붉은 털실 뭉치는 천천히 작아진다.무얼 뜨시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웃으며 말씀하신다.“나도 몰라. 뜨다 보면 조끼든 스웨터든 뭐가 되겠지.”그 말이 그럴듯해서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그런데 이번에는 주머니가 문제였다.주머니를 달려면 어느 순간 코를 내어야 하는데, 그게 제법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한참을 끙끙거리며 계산하시다가 결국 말씀하셨다.“아이고, 안 되겠다. 주머니 없이 해야지.”수십 년이 지나도 손은 뜨개질을 기억하고 있는데, 머리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괜찮아, 엄마. 요즘은 주머니 없어도 돼.”나는 괜히 맞장구.. 2023. 7. 17.
봄나물 뜯으며 나를 만난다 봄이 오면 괜히 설렌다봄이 되면 괜히 마음이 설렌다.마치 봄처녀라도 된 듯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먹거리를 찾아 나선다. 밭둑이며 산기슭이며 눈길이 바빠진다.오십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연의 풀들이 먹거리가 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어릴 적 쑥과 냉이를 캐 본 기억은 있다. 하지만 들과 산에 자라는 많은 풀들이 먹을 수 있다는 건 책에서나 본 이야기였다.실제로 뜯어 먹어 본 적은 거의 없었다.시골에 살아도 쑥과 냉이, 조금 더 나가면 뽕잎 정도가 내가 아는 나물의 전부였다.그러다 십여 년 전, 본격적으로 귀농을 하면서 봄이 달라졌다.봄이면 나물을 뜯겠다며 산으로 오르고, 들녘에 쪼그리고 앉아 하나하나 뜯는 재미에 빠졌다.지금 생각하면 봄이 기다려지는 첫 번째 이유는 아마 이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2022. 5. 7.
쑥 한 줌이 알려준 것들 봄나물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제법 쌀쌀한 이른 봄이다. 그래도 마당과 밭둑을 한 바퀴 둘러보면 봄은 이미 먼저 와 있다.냉이는 어느새 뿌리가 억세지고 꽃까지 피우기 시작했다. 조금 늦은 셈이다. 대신 지금은 씀바귀가 딱 맛있을 때다. 쌉싸름한 맛이 올라오고, 갓난아이 손바닥처럼 작은 머위가 얼굴을 내민다. 향긋한 달래와 막 고개를 들기 시작한 땅두릅까지.작은 텃밭과 밭둑, 뒷산 어귀를 잠시만 둘러봐도 먹을거리가 지천이다.시골생활 중 가장 바쁘고도 행복한 계절. 봄나물들의 축제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내가 할 일이라고는 이 녀석들과 봄 인사를 나누며 적당히 뜯고, 적당히 남겨 두는 일이다. 어느 자리에 무엇이 올라오는지 머릿속에 나물 지도를 그려 두고, 언제쯤 다시 뜯으면 좋을지 슬며시.. 2022. 3. 25.
아버지, 힘내세요|아흔다섯 아버지의 우울 앞에서 아버지가 우울해하셨다.거실 소파에 앉아 벽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니 계시다가, 어느새 담요를 덮고 잠이 드시곤 했다.원래 아버지 거실에는 늘 TV 소리가 있었다.조금 시끄럽고 투박해 보이는 프로레슬링이 하루 종일 나오곤 했다. 마음속으로는 ‘좀 끄시면 좋겠다’ 생각한 적도 많았다.그런데 어느 날부터 TV도 켜지지 않았다.불도 제대로 켜지 않은 거실에 조용히 앉아 계신 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을 아프게 했다.“아버지, 왜 TV 안 보세요?”한참 뜸을 들이시던 아버지가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아무래도 내가 올해는 못 넘길 것 같아. 자신이 없구나.”순간 마음이 철렁했다.요즘은 백세시대라고, 아직 한참 더 사실 거라고 가볍게 웃으며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그해 아버지는 아흔다섯이셨다.평생 가족을 지.. 2022. 2. 26.
강원국 《나는 말하듯이 쓴다》를 읽으며|질문이 글이 된다는 것 글을 조금 더 잘 쓰고 싶다는 마음에 강원국의 《나는 말하듯이 쓴다》를 읽기 시작했다.제목부터 왠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말하듯이 쓴다.’왠지 부담이 덜했다.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정말 그랬다. 어렵지 않은데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래서 자꾸 메모하게 된다. 휙 읽고 덮는 책이 아니라, 한 문장씩 곱씹으며 읽게 되는 책이었다.첫 장의 제목은 ‘조금은 뻔뻔하게, 조금은 용감하게’였다.그 안에서 특히 마음에 들어온 건 ‘질문의 힘’ 에 대한 이야기였다.우리는 질문보다 답을 찾는 교육을 받았다책에서는 말한다.그동안 우리의 교육은 질문하는 교육이 아니라, 질문에 맞는 답을 찾는 교육이었다고.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는 말 같았다.그래서였을까.글쓰기가 늘 어렵게 느껴졌다.정답은 찾으려 했지만, 내 이야기를 꺼내는.. 2022.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