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를 쓰다가 시점을 바꾸고 싶어질 때가 있다.
처음에는 ‘유진은 학교에서 돌아왔다’라고 썼는데, 몇 장을 쓰고 나니 자꾸 인물과 거리가 느껴진다. 아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여 주고 싶어진다.
그래서 문장을 바꿔 본다.
‘유진은 문 앞에서 한참 망설였다.’
이 문장을,
‘나는 문 앞에서 한참 망설였다.’
로 고친다.
처음에는 이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이름을 ‘나’로 바꾸고, ‘유진의’를 ‘나의’로 바꾸면 3인칭 원고가 1인칭 원고가 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몇 쪽만 고쳐 봐도 문제가 생긴다.
문법적으로는 1인칭인데 여전히 누군가가 유진을 바깥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때 알게 된다.
시점을 바꾼다는 것은 주어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이야기를 바라보는 눈을 바꾸는 일이라는 것을.

‘유진은’을 ‘나는’으로 바꾼다고 1인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3인칭 원고에 이런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유진은 선생님의 기침 소리를 들으며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선생님의 얼굴은 평소보다 창백했고, 유진은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닐까 걱정했다.’
이 문장의 ‘유진은’을 ‘나는’으로 바꿀 수 있다.
‘나는 선생님의 기침 소리를 들으며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선생님의 얼굴은 평소보다 창백했고, 나는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닐까 걱정했다.’
문법적으로 틀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정말 아이가 그 순간 자기 마음을 이렇게 정리할까.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닐까 걱정했다.’
이것은 아이가 순간적으로 경험하는 마음이라기보다 그 마음을 한 걸음 떨어져 정리하는 서술에 가깝다.
조금 다르게 써 볼 수 있다.
‘선생님이 또 기침을 했다. 이번에는 길었다.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한동안 고개를 들지 않았다. 왜 저러시지? 나는 노래책을 내려놓았다.’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두 번째 문장에서는 아이가 먼저 판단하지 않는다.
본다.
듣는다.
그리고 반응한다.
1인칭으로 가까이 들어갈수록 감정을 설명하기 전에 아이가 경험하는 순간을 먼저 보여 줄 필요가 있다.
1인칭이 되면 아이가 모르는 것은 쓸 수 없다
3인칭으로 쓸 때는 작가가 알고 있는 정보를 문장에 넣기 쉽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애써 웃었다.’
작가는 선생님의 마음을 알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쓸 수 있다.
하지만 아이가 ‘나’가 되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아이는 선생님이 왜 웃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보아야 한다.
‘선생님은 기침을 멈추고 웃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까보다 더 힘들어 보였다.’
아이는 관찰하고 추측한다.
확신하지 못한다.
이 제한이 처음에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이야기가 생긴다.
아이가 모르면 독자도 모른다.
왜 저 사람은 저런 행동을 할까.
무엇을 숨기고 있는 걸까.
독자는 아이와 함께 사람을 바라보게 된다.
1인칭의 약점처럼 보이는 ‘모름’이 동화에서는 독자를 아이 곁에 세우는 힘이 될 수 있다.
어른 작가의 말이 아이의 입으로 나오고 있지는 않은가
동화를 1인칭으로 쓸 때 가장 조심하게 되는 부분은 아이의 목소리다.
작가는 어른이다.
이미 많은 것을 경험했고 사건의 의미도 알고 있다.
그래서 아이가 아직 알 수 없는 것을 아이의 입으로 말하게 만들기 쉽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이다.
‘그날 나는 비로소 이름이란 한 사람의 정체성과 역사를 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뜻은 분명하다.
하지만 어린 화자가 그 순간 정말 ‘정체성과 역사’라는 방식으로 자기 경험을 받아들였을까.
아이는 훨씬 구체적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내 이름인데 왜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바꾸는지 알 수 없었다.’
혹은,
‘내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한다는 게 갑자기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런 문장에는 어른의 해석보다 아이가 지금 발견하고 있는 감각이 있다.
동화에서 1인칭을 선택한다면 작가는 한 걸음 물러나야 한다.
작가가 알고 있는 의미를 아이가 아직 모르게 두는 용기가 필요하다.
독자는 아이보다 어른일 수도 있다.
아이가 말하지 않은 의미를 독자가 알아차릴 수 있다.
그것이 동화의 여백이 된다.
1인칭에서는 감각이 훨씬 중요해진다
아이는 세상을 개념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냄새와 소리, 손끝의 감촉과 몸의 움직임으로 먼저 경험한다.
그래서 1인칭 동화에서는 감각이 강력한 도구가 된다.
‘교실 분위기가 무거웠다.’
라고 설명하는 대신,
‘아무도 책장을 넘기지 않았다. 선생님 구두 소리만 교실 끝까지 또각또각 따라왔다.’
라고 쓸 수 있다.
‘나는 무서웠다.’
대신,
‘책상 밑에서 두 손을 꼭 잡았다. 손바닥이 축축했다.’
라고 쓸 수도 있다.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몸을 통해 두려움이 전달된다.
특히 어린 화자일수록 이런 방식이 자연스럽다.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정확한 단어로 설명하지 못할 수 있지만 몸은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1인칭 동화에서 감각은 묘사가 아니라 화자의 언어가 될 수 있다.
1인칭은 더 생생하지만 항상 더 좋은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생긴다.
1인칭으로 바꾸면 인물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
그렇다면 1인칭이 항상 더 좋은 시점일까.
그렇지는 않다.
3인칭에는 3인칭만의 거리가 있다.
아이의 모습을 조금 떨어져 바라봐야 더 슬픈 장면도 있다.
아이가 자신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때 작가가 조금 거리를 두고 보여 주는 편이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특히 여러 인물의 행동을 함께 보여 줘야 하는 이야기에서는 1인칭의 제한이 답답해질 수 있다.
한 아이가 보지 못한 곳에서 중요한 사건이 계속 일어난다면 작가는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 자꾸 우회해야 한다.
그래서 시점을 결정할 때 ‘어느 쪽이 더 생생한가’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물어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아이가 직접 말할 때 더 강해지는가, 아니면 아이를 바라볼 때 더 강해지는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질문이다.
같은 장면을 두 시점으로 써 보면 답이 보인다
시점이 결정되지 않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고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써 보는 것이다.
같은 장면을 짧게 두 번 쓴다.
먼저 3인칭으로 쓴다.
‘유진은 마루 끝에 앉았다. 방 안에서 다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유진은 문 쪽을 바라보았지만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1인칭으로 바꿔 본다.
‘방 안에서 또 기침 소리가 났다. 아까보다 더 깊었다. 나는 일어날까 말까 하다가 마루 끝만 손톱으로 긁었다.’
사건은 같다.
하지만 첫 번째에서는 유진의 모습이 보인다.
두 번째에서는 유진의 망설임 속으로 들어간다.
어느 것이 무조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작품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아이의 행동 자체를 보여 주고 싶다면 3인칭이 좋을 수 있고,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를 함께 경험하게 하고 싶다면 1인칭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짧은 장면 하나만 비교해도 원고 전체를 고친 뒤 후회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1인칭으로 바꿀 때는 ‘나’를 너무 많이 쓰지 않는다
3인칭 원고를 1인칭으로 바꾸다 보면 이런 문장이 이어질 수 있다.
‘나는 문을 열었다. 나는 마당으로 나갔다. 나는 담장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유진은’을 기계적으로 ‘나는’으로 바꾼 흔적이다.
한국어에서는 주어가 분명하면 매번 ‘나는’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갔다. 담장 쪽을 바라보는 순간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훨씬 자연스럽다.
1인칭의 핵심은 ‘나’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 것이 아니다.
모든 장면이 ‘나’의 지각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잘못 이해하는지가 1인칭을 만든다.
시점을 바꾸기 전에 한 장만 시험해 본다
이미 어느 정도 써 놓은 원고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꺼번에 고치지 않는 편이 좋다.
먼저 중요한 장면 하나를 고른다.
주인공이 가장 두려워하는 장면도 좋고, 누군가와 갈등하는 장면도 좋다.
그 장면만 1인칭으로 완전히 다시 써 본다.
단순히 이름을 바꾸지 않는다.
아이에게 보이지 않는 정보는 지운다.
어른다운 해석도 덜어낸다.
아이에게 먼저 들어오는 소리와 냄새, 몸의 감각을 찾아본다.
그리고 기존 3인칭 장면과 나란히 읽는다.
그때 세 가지를 확인한다.
어느 쪽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리는가.
어느 쪽에서 이야기의 중요한 정보를 더 자연스럽게 감출 수 있는가.
어느 쪽을 읽었을 때 다음 장면이 더 궁금해지는가.
이 세 질문에 대한 답이 시점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창작자의 노트|더 가까운 시점이 더 좋은 시점은 아니다
원고를 고치다 보면 인물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래서 3인칭보다 1인칭이 더 생생하고 진솔할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직접 바꾸어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너무 가까워져서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이 생긴다.
아이의 입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시대와 사건도 있고, 아이가 보지 못하는 다른 인물의 마음도 있다.
반대로 바로 그 한계 때문에 작품이 살아나는 경우도 있다.
아이가 모르는 것을 독자가 조금 먼저 알아차리는 순간.
아이는 평범하게 말했는데 어른 독자는 그 말 뒤의 슬픔을 발견하는 순간.
그것은 1인칭 동화가 가질 수 있는 특별한 힘이다.
그래서 앞으로 원고에서 ‘유진은’을 ‘나는’으로 바꾸고 싶어질 때 먼저 문장을 고치지는 않으려 한다.
한 가지를 먼저 물어보려고 한다.
나는 유진의 이야기를 보여 주고 싶은가, 아니면 유진이 보는 세상을 함께 보고 싶은가.
두 번째라면 ‘나는’으로 바꿀 이유가 생긴다.
그때부터 해야 할 일은 대명사를 고치는 것이 아니다.
어른인 작가가 알고 있는 것을 잠시 내려놓고, 아이의 눈높이로 다시 그 세계에 들어가는 일이다.
어쩌면 1인칭으로 바꾼다는 것은 인물을 작가에게 가까이 데려오는 일이 아니라, 작가가 인물에게로 내려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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