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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일지

동화의 첫 문장은 어떻게 시작할까|설명보다 궁금증을 남기는 첫 장면

by 들꽃 2026. 10. 7.

동화의 첫 문장을 고치며 원고와 연필을 바라보는 창작자의 책상
첫 문장을 여러 번 쓰고 지우며 이야기가 시작될 자리를 찾아가는 동화 창작 과정을 표현한 이미지

독자에게 설명하지 않고 이야기를 건네는 법

동화를 쓰면서 이상하게도 마지막까지 마음에 남는 것은 첫 문장이다.

초고에서는 별 어려움 없이 썼던 문장이 퇴고를 거듭할수록 자꾸 걸린다. 한 편의 이야기를 끝까지 쓴 뒤 처음으로 돌아오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어디를 향하는지 알고 나서야 비로소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첫 문장이 정말 ‘처음’에 쓰이는 문장일까 생각한다. 원고의 맨 앞에 놓이는 문장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작가에게 첫 문장은 가장 나중에 발견되는 문장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요즘 한 편의 동화를 여러 차례 고치고 있다. 공모전에 보낼 작품이라 여기에서 작품의 내용이나 문장을 옮길 수는 없지만, 첫 장면을 고치는 동안 한 가지 질문에서 오래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왜 자꾸 독자에게 설명하려고 할까.

작가는 알고 있고, 독자는 모른다는 불안

초고를 쓸 때 나는 친절해진다.

주인공이 어떤 아이인지 알려주고 싶고, 이 아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말해 주고 싶다. 조금 뒤에 일어날 사건을 이해하려면 이것쯤은 미리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 배경도 설명한다.

그런데 이것은 정말 독자를 위한 친절이었을까.

퇴고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어쩌면 그것은 작가인 나의 불안에 가까웠다.

나는 이미 이야기의 끝을 알고 있다. 인물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도 알고 있고, 앞에 놓아둔 작은 물건 하나가 뒤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도 안다. 그런데 독자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 차이가 불안한 것이다.

그래서 자꾸 알려준다.

이것은 이런 뜻이라고.
이 아이에게는 이런 사정이 있다고.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그렇게 설명을 하나씩 보태다 보면 독자가 모를 것은 줄어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야기까지 함께 줄어든다.

독자가 스스로 발견할 몫을 작가가 먼저 가져가 버렸기 때문이다.

독자가 모르는 것은 결함일까

나는 한동안 독자가 모르는 상태를 좋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특히 동화에서는 더 그랬다. 어린 독자가 읽는 글이니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어른 독자에게 쓰는 글보다 조금 더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생각을 의심한다.

아이에게 어려운 문장을 쓰지 않는 것과 아이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아이들도 모르는 것을 견딜 수 있다.

아니, 오히려 모르는 것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따라간다.

문이 닫혀 있으면 열어 보고 싶고, 누군가 감춘 것이 있으면 알고 싶고, 평소와 다른 일이 벌어지면 이유를 찾고 싶어 한다. 이야기의 힘은 때로 ‘알고 있음’보다 ‘아직 모름’에서 생긴다.

그렇다면 첫 장면에서 작가가 해야 하는 일도 달라진다.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빠짐없이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지금 말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된다.

첫 문장은 정보를 주는 자리가 아니라 관계를 맺는 자리다

첫 문장을 생각하다 보니 결국 독자와 작가의 관계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첫 장면에서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말과 비슷하다.

‘내가 다 알고 있으니 따라와.’

반대로 조금 남겨 둔다는 것은 이런 태도에 가깝다.

‘나는 여기까지만 보여줄게. 나머지는 네가 한번 봐.’

둘 사이에는 꽤 큰 차이가 있다.

전자의 독자는 설명을 듣는 사람이고, 후자의 독자는 이야기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쓰는 동화에서 아이가 후자의 독자였으면 한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길을 얌전히 따라오는 아이가 아니라, 인물의 표정을 보고 마음을 짐작하고, 이상한 물건 하나를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의미를 알아차리고, 어떤 문장에서는 작가가 말하지 않은 것까지 느끼는 독자.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첫 문장을 보는 기준도 달라졌다.

문장이 얼마나 멋있는가보다 이 문장이 독자에게 어떤 자리를 내어 주는가를 보게 된다.

설명을 지운다는 것은 정보를 없애는 일이 아니었다

퇴고를 하면서 설명을 지우면 처음에는 불안하다.

‘이걸 빼도 이해할까?’

그래서 한 문장을 지웠다가 다시 넣기도 한다.

하지만 앞부분의 설명을 뒤로 옮겨 보면 의외의 일이 생긴다. 처음부터 알 필요가 없었던 정보가 꽤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문장을 지우고 고쳐 쓴 흔적이 남아 있는 동화 원고
실제 동화 원고의 내용을 알아볼 수 없도록 흐리게 처리하고, 연필로 남긴 수정과 퇴고의 흔적을 보여주는 이미지.

어떤 정보는 인물의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고, 어떤 것은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끝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이때 지우기는 단순한 문장 다이어트가 아니다.

정보가 있어야 할 정확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첫 장면에서 빠진 문장이 이야기의 중간으로 가기도 한다. 설명 한 문장이 인물의 행동 하나로 바뀌기도 한다. 작가가 직접 말하던 감정이 인물의 침묵으로 남기도 한다.

나는 이 과정에서 퇴고가 ‘잘못 쓴 문장을 고치는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퇴고는 때로 작가가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독자에게 돌려주는 일이었다.

동화의 첫 문장은 어린 독자를 얼마나 믿는가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다시 아이 독자에게 돌아온다.

동화를 쓴다는 이유로 아이보다 먼저 답을 말해 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슬픈 장면 앞에서 ‘아이는 슬펐다’고 먼저 말하고, 이상한 일이 벌어지자마자 그 이유를 알려주고,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행동하기도 전에 설명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이를 위해 쉽게 쓰는 것과 아이의 몫까지 대신 생각해 주는 것은 다르다.

쉬운 문장을 쓰되 생각할 여지는 남길 수 있다.
복잡하지 않은 사건을 쓰되 깊은 감정을 담을 수 있다.
친절하게 쓰되 모든 답을 건네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그 경계를 아직 배우는 중이다.

그래서 첫 장면을 고칠 때마다 문장보다 먼저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이 독자를 얼마나 믿고 있는가.

이야기는 작가가 한 걸음 물러날 때 시작된다

예전에는 첫 문장이 독자를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붙잡는다는 말에는 어딘가 힘이 들어가 있다. 놀라게 해야 할 것 같고, 특별한 문장을 써야 할 것 같고, 첫 줄부터 사건을 터뜨려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그렇게 시작될 필요는 없다.

조용히 시작해도 된다.

평범한 하루에 아주 작은 틈 하나만 생겨도 된다.

다만 그 틈을 작가가 얼른 설명으로 메우지 않는 것.

독자가 그 틈을 들여다볼 시간을 주는 것.

요즘 내가 첫 문장을 고치며 배우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것이다.

첫 문장은 작가가 가장 먼저 말하는 자리이면서, 동시에 가장 먼저 한 걸음 물러서야 하는 자리다.

작가가 조금 물러나면 인물이 보인다.
인물이 움직이면 독자가 따라간다.
그리고 독자가 자기 힘으로 한 걸음 들어오는 순간,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