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를 쓰다 보면 나는 자꾸 친절해진다. 아니, 친절해진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왜 화가 났는지, 왜 갑자기 입을 다물었는지, 왜 돌아서면서도 한 번 더 뒤를 보았는지 설명을 붙인다. 어린이가 읽는 글이니 이 정도는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초고를 쓸 때는 그런 문장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머릿속에는 이미 인물의 마음과 사건의 앞뒤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원고를 며칠 묵혀 두었다가 다시 읽을 때 생긴다.
‘내가 이 말을 앞에서도 하지 않았나?’
대사에서 이미 드러난 마음을 다음 문장에서 또 설명하고, 행동으로 보여준 감정을 작가가 다시 이름 붙여 놓은 곳이 보인다. 그 문장을 지워 본다. 이상하게도 뜻이 모호해지는 것이 아니라 장면이 더 선명해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설명을 모두 지우면 될까. 그것도 아니었다. 설명을 덜어내는 것과 독자를 불친절하게 내버려 두는 것은 달랐다.
그래서 요즘 퇴고할 때는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야 한다’는 작법의 말을 먼저 떠올리지 않는다. 대신 내 원고 앞에서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을 한다.
이 문장은 정말 독자에게 필요한 설명일까.
그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쓰는 동화의 문장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초고를 쓰면 나는 왜 자꾸 마음까지 설명할까
내 초고에는 인물의 마음을 대신 말해 주는 문장이 생각보다 많다. 아이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는데도 그 뒤에 ‘속상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붙이고 싶어진다.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돌아선 아이가 있다면 ‘화가 났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했다’고 설명해야 마음이 놓인다. 처음에는 이것이 어린 독자를 위한 친절이라고 생각했다. 동화는 아이들이 읽는 글이니 인물의 마음과 사건을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고를 반복해서 읽고 고치다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어떤 설명은 독자를 위해서라기보다 쓰는 내가 불안해서 붙잡고 있는 문장에 가까웠다.
작가는 인물에 대해 독자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이 아이가 무엇을 기다리는지, 왜 그 말에 유난히 상처받는지, 앞에서는 웃었으면서 돌아서서는 왜 울고 싶은지까지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독자에게도 모두 전달하고 싶어진다. 한 가지라도 빠뜨리면 인물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독자는 작가의 머릿속을 그대로 전달받기 위해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다. 장면을 보고, 대사를 듣고, 인물의 행동을 따라가며 스스로 마음을 짐작한다.
퇴고하면서 이런 문장을 만나면 요즘은 바로 삭제하지 않고 먼저 손으로 가려 본다. 그리고 앞 문장부터 다시 읽는다. 설명 한 줄을 가렸는데도 아이가 왜 입을 다물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면 굳이 내가 다시 말할 필요가 있을까. 반대로 그 문장이 사라지자 사건의 연결 자체가 끊어진다면 설명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읽어 보니 ‘설명을 많이 하면 친절하고 적게 하면 세련된 글’이라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무엇을 독자에게 알려주고 무엇을 독자가 발견하도록 남겨 둘 것인가. 그것이 내가 퇴고하면서 판단해야 할 일이었다.
감정을 지웠는데 오히려 아이의 마음이 보였다
퇴고를 하다가 재미있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서운했다’, ‘무서웠다’, ‘미안했다’ 같은 감정을 나타내는 말을 지웠는데 인물의 마음이 오히려 더 잘 보이는 순간이다. 처음에는 조금 불안하다. 이 단어를 빼면 독자가 아이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문장을 지웠다가 다시 살리기도 한다. 그런데 앞뒤를 몇 번 읽어 보면 이미 아이가 하는 행동 안에 그 마음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대답을 하지 않는 것, 손에 든 물건을 괜히 만지작거리는 것, 가 버렸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자꾸 한쪽을 바라보는 것. 그런 작은 행동들이 ‘속상했다’라는 한 단어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은 원래 한 단어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 화가 나면서도 걱정할 수 있고, 밉다가도 보고 싶을 수 있다. 사과하기는 싫지만 상대가 먼저 말을 걸어 주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아이들의 마음이라고 해서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정확한 말로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행동으로 먼저 드러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인물을 쓰면서 작가가 곧바로 ‘이 아이는 지금 서운하다’고 이름을 붙여 버리면 복잡했던 마음이 갑자기 하나의 단어 안에 갇혀 버릴 수도 있다.
내가 쓰는 동화에서도 그런 순간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아이가 무엇을 느끼는지 먼저 설명하기보다 그 마음 때문에 무엇을 하는지를 보여주면 어떨까. 문을 세게 닫는 것보다 조용히 신발 끝만 내려다보는 아이가 더 어울릴 수도 있고, 펑펑 우는 것보다 평소 잘 먹던 간식을 그대로 남겨 두는 행동이 그 인물에게는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행동으로 바꾸라’는 공식을 따르는 일이 아니었다. 그 아이가 정말 그 상황에 놓였다면 어떻게 할지를 오래 생각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찾은 행동 하나는 긴 설명보다 인물을 더 살아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감정 단어 하나를 지울 때도 단순히 문장을 줄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인물이 스스로 움직일 공간을 조금 내어 준다고 생각한다.
합평을 받고 나면 설명이 많은 문장이 더 잘 보였다
혼자 원고를 읽을 때와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준 뒤 다시 읽을 때는 이상할 만큼 보이는 것이 다르다. 혼자 쓸 때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문장이 합평 뒤에는 지나친 설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여러 번 강조한 부분을 읽는 사람은 이미 앞에서 알아차렸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반대로 나는 충분히 썼다고 생각했는데 읽는 사람이 “여기서는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곳도 있다. 그럴 때마다 설명을 줄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다시 배운다.
합평에서 받은 말을 그대로 원고에 옮기지는 않는다. 누군가 “이 부분은 설명이 많다”고 하면 그 문장을 무조건 지우기보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를 먼저 살펴본다. 앞 장면에서 이미 같은 내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인물의 대사가 말한 내용을 서술자가 또 해설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한다. 반대로 설명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받았을 때도 곧바로 두세 문장을 보태기보다 앞에 놓인 장면이 충분했는지를 먼저 본다. 때로는 설명 한 문장을 추가하는 것보다 앞의 행동 하나를 바로잡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게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합평을 하면서 특히 알게 된 것은 작가에게는 보이지만 독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정보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원고 밖의 사정까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문장 사이에 빠진 것이 있어도 자연스럽게 이어 읽는다. 하지만 독자는 종이에 적힌 것만 가지고 이야기를 따라간다. 그러니 어떤 설명은 반드시 필요하다. 동시에 작가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같은 뜻을 두 번, 세 번 확인해 주는 부분도 생긴다. 결국 합평은 ‘설명을 줄여라’라는 지시를 받는 자리가 아니라 내가 독자의 눈으로 내 원고를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는 과정이었다. 다른 사람이 어디에서 멈추고 어디에서는 이미 충분히 알아차렸는지를 확인하면서, 설명의 많고 적음보다 설명이 놓여야 할 정확한 자리를 조금씩 배우게 된다.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했더니 글이 오히려 길어졌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는 말을 처음 의식했을 때는 설명을 가능한 한 없애는 것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원고에 적용해 보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설명 한 문장으로 지나갈 수 있는 일을 모두 장면으로 바꾸면 이야기는 금세 길어진다.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매일의 모습을 하나씩 그릴 필요는 없다. 아이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길을 걷는 모든 과정을 묘사할 이유도 없다. ‘사흘 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라는 설명 한 줄이면 충분한 곳이 분명히 있다.
특히 동화는 이야기의 속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원고를 쓰면서 자주 느낀다. 내가 문장을 공들여 썼다는 이유만으로 독자가 그 장면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건과 사건 사이를 빠르게 건너가야 할 때가 있고, 반대로 아이의 마음이 바뀌는 중요한 순간에는 잠시 멈춰야 할 때가 있다. 설명은 그 속도를 조절하는 역할도 한다. 필요한 정보를 짧게 전달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게 해 주는 설명은 이야기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으로 밀어 준다.
그래서 지금은 ‘설명’과 ‘보여주기’를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장소가 바뀌었는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처음 등장한 사람이 누구인지처럼 독자가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분명하게 알려주는 편이 낫다. 반면 인물의 감정이 이미 행동과 대사에 충분히 담겨 있다면 작가가 뒤에서 정답을 알려주듯 해설하지 않아도 된다. 내게 필요한 것은 설명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어디에서는 빨리 말하고, 어디에서는 말하지 않고 기다릴지를 판단하는 감각인 것 같다. 그 감각은 작법책의 한 문장만으로 생기지 않았다. 원고를 쓰고, 덜어내고, 다시 읽고, 때로는 지운 문장을 되살리는 일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생겨났다.
요즘은 대사 다음 문장을 한 번 더 들여다본다
내 원고에서 설명이 숨어 있기 쉬운 곳 중 하나가 대사 다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물이 한마디를 하고 나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작가가 덧붙이고 싶어진다. 아이가 “나 하나도 안 기다렸어.”라고 말했다면 뒤에 ‘하지만 사실은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고 쓰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뜻은 아주 정확해진다. 그러나 앞에서 아이가 몇 번이나 시계를 보았거나 문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장면이 있었다면 독자는 이미 알고 있다. 오히려 아이의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는 순간에 그 아이의 진짜 마음이 더 잘 드러날 수도 있다.
그래서 요즘 퇴고할 때는 대사가 나오면 바로 다음 문장을 유심히 본다. 그 문장이 대사에 없는 새로운 정보를 주는지, 아니면 방금 한 말을 작가가 다시 번역하고 있는지를 살핀다. ‘화가 나서 말했다’, ‘섭섭한 마음에 대답했다’,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 같은 표현도 앞뒤 장면에 따라서는 꼭 필요하지만, 이미 충분히 보인 감정을 한 번 더 확인하는 문장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설명을 덜어내거나 인물다운 작은 행동 하나로 바꾸어 본다.
그렇다고 행동을 많이 붙이는 것도 답은 아니었다.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쥐고, 고개를 돌리고, 발을 구르는 행동을 한꺼번에 쓰면 설명을 행동으로 바꿨을 뿐 여전히 작가가 감정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중요한 것은 행동의 개수가 아니라 그 아이에게 어울리는 행동 하나를 찾는 일이었다. 말로는 괜찮다고 하면서 컵 가장자리만 손가락으로 문지르는 아이도 있을 것이고, 아무 말 없이 먼저 가 버리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 한 가지를 제대로 찾았을 때 대사 뒤의 설명 한 줄을 지울 용기가 생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작가가 한마디 덜 했는데 인물의 목소리는 오히려 더 크게 들릴 때가 있다.
설명 한 문장을 지우는 일도 결국 퇴고였다
예전에는 퇴고라고 하면 어색한 문장을 매끄럽게 고치거나 같은 단어가 반복되는 것을 찾아 바꾸는 일부터 생각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무엇을 더 쓸 것인가만큼 무엇을 말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도 퇴고였다. 초고에서 나는 이야기를 놓칠까 봐 많은 것을 붙잡아 둔다. 인물의 마음도 적어 두고, 사건의 이유도 설명하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의미도 문장 속에 남겨 둔다. 그렇게 해야 일단 이야기를 끝까지 데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초고에 설명이 많다고 해서 처음부터 잘못 쓴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원고가 완성된 뒤에도 초고에서 붙잡아 둔 모든 설명을 그대로 가지고 갈 필요가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나는 한 문장을 지웠다가 다시 넣기도 하고, 두 문장을 한 문장으로 줄이기도 한다. 때로는 설명을 지웠다가 앞 장면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발견해 오히려 장면을 새로 쓰기도 한다. 그렇게 고치다 보면 퇴고는 글을 예쁘게 다듬는 작업이라기보다 이야기에서 정말 필요한 것을 골라내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내가 설명 문장을 만났을 때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도 그래서 단순해졌다. ‘이 문장은 독자가 꼭 알아야 할 것을 알려주는가, 아니면 독자가 이미 알아챈 것을 내가 다시 설명하고 있는가.’ 후자라면 일단 지워 본다. 그리고 앞뒤를 다시 읽는다. 인물의 마음이 여전히 느껴지고 사건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면 그대로 둔다. 지우자 꼭 필요한 연결까지 사라졌다면 다시 살린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한 가지는 조금 알 것 같다.
작가가 모든 것을 말해 주지 않아도 독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아본다. 내가 설명 한 문장을 덜어낸 자리에 독자는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가지고 들어온다.
작가가 한 발 물러서자, 그제야 독자가 들어올 자리가 생겼다.
그것이 요즘 내가 동화를 고치면서 배우고 있는 ‘설명’에 관한 가장 큰 공부다.
'창작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동화의 첫 문장은 어떻게 시작할까|설명보다 궁금증을 남기는 첫 장면 (0) | 2026.10.07 |
|---|---|
| 동화를 1인칭으로 바꾸면 무엇이 달라질까|‘유진은’ 을 ‘ 나는’으로 고치기 전에 (0) | 2026.09.24 |
| 동화 속 아이의 말투는 어떻게 쓸까|어른스러운 말을 지우는 퇴고 (0) | 2026.09.13 |
| 동화 제목은 어떻게 정할까|초고 제목이 퇴고하면서 달라지는 이유 (1) | 2026.09.09 |
| 합평에서 들은 말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까|고칠 문장과 지킬 것을 구분하는 법 (0) | 2026.09.08 |